작성자: Mun Tokyun
이미 앞에서
좋고 나쁨으로부터 비롯되는 개인과 사회의 여러 문제상황을 보았다.
그것은 1, 2의 대립과정으로 보았지만, 사실 단순하지는 않다.
1 처음 누군가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에 차서 무언가를 행한다.
2 이로부터 피해를 보았다고 생각하는 이가, 다시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에 차 그 1을 미워하고 원망하고
비난하고 욕하고 보복을 가하고 해친다..
여기까지가 1 단계의 모습이었다면,
그 모습은 다시 입장을 바꿔 계속 이어져 간다.
즉 그것이 거의 무한대로 상속되고 반복하고 반복해 감을 의미한다.
보복이 보복을 부르고 원한이 원한을 만들어 끝없이 쉬지않고 상속해간다는 말은 이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이 상황에 놓여서 살아가는 이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음미하지 않고
당장 자신의 입장과 상황만 고집하고 그 가운데 1을 택해 고집한다.
누군가 이런 자신을 다시 비난하거나, 자신과 자신의 상대를 비난하거나, 또는 모른 체한다해도
그것은 쉬지 않고, 이 모두와 함께 얽혀 계속 고집해 나감을 의미한다.
심지어 그 고집에 머무르는 이는 다른 이들의 마음과 말과 행동도 같이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사실 그래서 앞 파일에 반복해 말한 것은 전체적으로 자신이 놓인 상황이
이 1, 2, 3, 4가 얽혀 있는 것임을 자세히 객관적으로 보고 대할 필요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조금이라도 그것을 본다면 조금은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도 열린다.
자신은 조금도 자신이 놓인 입장을 떠나지 않고 집착해 고집하지만,
전체적으로 이 1,2,3,4의 각 입장을 생각하고 바라보면
조금은 자신의 고집을 벗어날 가능성도 열리게 됨을 의미한다.
그것이 또 사실 해결의 첫 실마리가 됨도 의미한다.
자신이 어디에 위치하던 자신의 고집을 그대로 갖고 나아갈 때
반대해 나오는 다른입장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신이 정말 자신이 말한 그 주장과 입장을 그대로 관철할 때
다시 자신이 상대의입장이 되면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가를 한번은 생각해 볼 가능성이
열린다는 의미다.
그래서 사실 자신의원래의 입장을 조금 완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렇다 해도 원래의 자신의 입장을 그대로 고집하고 나아가려는 경우도 있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입장과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비록 상대가 그렇다 해도 나는 나의 입장을 그대로 지키고 관철시킬 도리 밖에는 없다는 것을 말한다.
또 이를 반대로 말하면 나는 나의 입장을 그대로 관철시키고
오히려 상대가 이를 참고 받아들여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고비록 자신의 주장을 그대로 상대가 자신에게 적용하여 행하게 상황이 서로 맞바뀐다해도
자신 역시그것을 받아들이고 상대처럼 나오지 않겠다는것도의미한다.
이렇게 고집한다면, 사실 그것도 하나의 해결방안은 된다.
무슨 말인가하면, 입장이 정반대가 되어 나올 때
이제 문제해결을 어렵게 만든 상대방의 입장과 같은 형태가 아니라,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참겠다는 것을 그것이 의미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난 미운 이가 있으면 사정을 보지 않고 때린다..
그러나 이제 자신의 상대 입장이 자신이 되면 자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즉상대가 자신을 미워해 자신을 사정을 보지 않고 때리면 자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물은 것이다.
사실 이 질문에 자신이 그렇게 하지 않아야 겠다라는 생각을 일으키기를 바란 것이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고집하고, 자신은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미운 상대를 사정을 헤아리지 않고 때리겠다고 나서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그가 앞에 말한 '그래도 괜찮다'가 사실은 문제 해결의 한 방안도 된다는 말이다.
이제 입장이 바뀌어 자신을 미워하는 이가
자신과 똑같은 논리와 견해를 가지고 그대로 적용해서
자신을 사정을 보지 않고 신나게 때린다 해도
자신은 괜찮다고 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 그렇게 괜찮다고 한 일방이 상황이 바뀔 때도 머물러 준다면,
문제는 다음에 상황이 바뀔 때즘에는 적어도 해소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나 개인의 순환 변화과정에서 입장이 바뀌어 들어가는 순간
그렇게 한 일방이 이를 그처럼 대하고 임하면 문제가 해소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렇게 고집하는 이는 그대로 자신의 입장을 고집하여 관철해 나가려 하고,
오히려 상대가 이를 참아야 함을 강변하게 된다.
그래서
믿거나 말거나의 이야기로 들어가면
각 개인은 윤회를 하는데 이런 상태가 벌어짐을 이야기하게 된다.
예를 들어 서양에서 한 백인 노예주인이 흑인을 상대로 가혹한 행위를 했는데,
그가 오늘날 그 흑인이 모는 백마로 변해 태어나,
공원에서 매일같이 그 흑인의 매를 맞아가며
아무런 불평도 말하지 못하고 공원을 오가는 역할을 맡으며 살고 있다고 한다.
가두어 길러지는 많은 소 돼지 닭과 같은 가축도
사실은 서로가 서로 그런 관계로 역할을 바꿔 갚음과 되갚음을 주고 받는 관계라고 한다.
그런 관계는 최면상태에 들어 예언을 행해서 유명한 미국의 예언가 에드가 케이시의 기록에도 나타나고
특히 불교를 수행하는 이들도 그런 관계로 사람들이
세상에서 행해 나가는 모습을 깨달아 보게 된다고 말한다.
아마 축생이 그 상태가 비록 불만이어도 그것을 말하지 않고
참음으로 일관하면서 받아들이고 나중에는 도축되고 사람에게 고기를 제공해주고
사라지고 마는 것은
결국 그 자신도 상대에게 그와 같이 행하면서 그것을 요구했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믿거나 말거나에서 믿지 못할 일이 아닌가..
한 번 내 뜻을 관철했으면 그 뿐이지 그 이후 그 이후의 그런 원치 않는 결과가
어찌 내게 다시 돌아올 것인가..
사실 이 고집을 굽히지 않는 이의 어리석음의 심함이 이 입장과 다르지 않다.
자신은 오직 자신이 원하는 좋은 것만 얻고 나쁜 것은 모두 남의 차지고,
그리고 그렇게 살다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지 무엇이 남는가..
그러나 역사를 본다해도 그렇고 개인의 한 생의 모습을 본다해도 과연 그런가..
물리학의 작용 반작용의 관계를 본다해도 그렇고 화학작용을 본다해도 그런가..
오직 그렇게어떤 하나만 얻고 그리고 그 뿐인 관계를 하나라도 찾아낼 수 있는가..
아마 그것은 그런 주장을 하는 이가 고집하는한 순간이나 일정기간에 닫힌 한단면 내용만 보고 고집하기 때문이리라고 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오늘 내가 행한 일은 그 반대의 내용을 다시 되돌려 받아야 한다.
그것을 쉬지 않으면 무한히 받아야 한다.
그래서 내가 남을 한 대 때리고 그것을 서로 멈추지 않으면
결국 만대 억대를 계속 주고 받고 이를 끝없이 이어가야 한다..
그래서 이것을 관찰한 이는 남이 미워 한 대를 때릴 마음을 일으키면
그 마음으로 그저 자신의 몸을 자신의 손으로 다섯대 여섯대 때리고 분이 풀릴 때까지
계속하다 멈추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말하게 된다.
결국은 같은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몸을 스스로 때리게 만드는 것이 힘들어 사용하는
리모컨 버튼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 남을 자신이 때리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자동적으로 언젠가 그 원인으로 자신이 맞게 된다..
리모컨의 원리가 인과관계에 의해 작동하듯
앞의 관계도 그 인과관계에 의해 일어난다..
마음이야 기적을 바라고 남을 때리면서 원하는 이익과 기쁨만 얻고
나머지 내용은 받지 않게 되기를 바라고
이런 일이 어떤 기적과 같은 관계로 일어나기를 바라겠지만,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자신이 종이를 불에 붙이고 나서 으레 나오는 재와 연기가안 나오고
자신이 원하는 금만 얻고 그칠 수있다면얼마나 좋겠는가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그 연쇄의 연쇄로 이어지는 관계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그 무엇만 하나 딱 얻고
멈출 도리는 없음을 말함이다.
사람이 갖는 마음에서의
1, 2,... 와 같은 자세가 일으키는 이 관계는 그래서
결국 번뇌와 고통과 악을 끝없이 돌고 돌게 만든다.
그러니 문제가 아닌가..
이제 누군가 1,2,3,4의 여러 관계를 보고
또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나는 1을 고집한다.
상대도 2, 3, 4를 고집한다.
내가 상대의 입장이 되어도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받아들인다.
그리고 다시 나는 그래도 내 입장에서는 1밖에는 행할 도리 밖에 없다고 머무르고 고집한다.
이 경우는 또 어떤가..
결국 이 이야기도 같다.
처음 이것을 늘어 놓고 살펴보자 한 것은
이들의 1,2,3,4가 얽히고 얽혀서 각자 정당하다고 믿고 고집하게 되지만,
그러나그를 통해서 서로 번뇌와 고통과 악을 계속
주고 받으며 키워가는면을 보고
고집을 버리고 완화해서 벗어나오라는 취지에서 한 것인데
이제 이 여러 입장을 골고루 보니
각기 그럴 수 밖에 없다고 보고
이제 각 입장에서 서로 최선을 다해 임하는 도리 밖에는 없다고 결론을 취해 나오고 만 것이다.
그 경우는 사실 앞에 이미 말한 1,2,3,4의 문제 그대로 다시
서술하는 것 이외는 다른 것이 없다.
결국 그렇게 서로 번갈아가면
번뇌와 고통과 악을 주고 받고 키워가며
이리 저리 헤매 움직이고 머물러 가는 도리만 있을 뿐
무슨 다른 말을 할 수 있는가..
그 말대로다.
그렇게 번뇌, 고통,악의 세계에 살아가는 것뿐이다.
한 번 환호를 지르고 그리고 다시 끔직한 고통속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한 번 남의 살을 베어 입에 물고 좋아하고
다시 자신의 살을 베이면서 고통속에서 몸부림치고를
반복할 뿐이다.
세상에서 취하는 단 물에 함께 붙어 함께 받을 수 밖에 없는
종합선물세트 안에서 내가 원하는 좋은 과자만 얻고
나머지는 받지 않고 버릴 방안이 없다는 것은
이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희망이야 즐거움과 고통, 약과 독이 함께 들어 있는 종합선물세트 속에서
오직 자신이 원하는 달콤한 즐거움과 약만 취하고
나머지는 버리고 받지 않기를 원하지만,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한다.
문제상황은 사실 이것이다.
그래서 문제 해결도 사실은 삶에서 사회에서
고통과 악을 해결해 없애는 것으로 단순화시키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남는 종합선물세트에서의 문제는 해결된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문제에서 번뇌의 독과 고통과 악의 문제의 원인은
사실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그것은 결국 우리가 행해 갖는
뜻과 말과 행위 가운데 그외 육체 재산 등등에서
무엇이 가장 주인이고 원인인가를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결국 그 모든 근원은
자신의 마음에서 갖는 뜻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에서 최초에 발생한 이 모든 문제의 관계는
이제 이 마음을 그대로 두고
그 외형만 자꾸 바꾼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너무 서로 궁핍해서 이 일을 시작했다고 보고
이 문제해결을 꾀하는 이는
이제 서로 다 어느 정도 생계를 해결한 상태에 이르면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나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애써 그 상태에 도달하려고 한다.
도달한다. 그러나해결되는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니 이제 다시 모두가 아주 풍요롭게 되면해결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애써 다시 그 상태에 도달하려고 한다. 도달한다. 그러나 해결되는가. 그래도 역시 해결되지 않는다..
오늘날 사회문제의 해결을 이렇게 바라보고 해결하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중요시하고 집착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물질을 많이 만들어 가지면 해결된다는 믿음이 그 바탕이다.
우리의 현실에서 이 문제를 보면
이제 그와 같이 해결하려는 시도는 까마득한 시대
아마 고조선 무렵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한나라와 고조선이 전쟁을 일으켜 고조선이 패망했다고 한다면,
서로 그렇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섰다가 한 쪽이 패배하고 만것이다.
오늘날은 다른가..
오래전 부터 국민소득 1000불만 달성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본 적이 있다.
그러면 1000불이 되고 그 소득이 다시 만불이 되었으니 해결되었는가..
사실은 아니다.
이제 3만불을 다시 바라보고 허덕이지만, 정말 3만불정도 되면 이제는 해결될 것인가.
그렇지 않다..
비록 각 개인이 지구 하나정도의 재화를 다 가지고 있어도 해결되지 않는다고 봄이 옳다.
문제의 원인을 이렇게 보고 바라보는 이는
가정에서 형제간에 작은 장난감이나 음식 하나를 놓고 싸우는 형제의 문제는
재벌집안의 형제에게서는 없어지리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음과 같다.
재벌집안의 형제는 물론 장난감을 가지고 싸우지는 않는다.
그러나 역시 싸운다.
가난한 집안의 형제가 장난감을 중요하다고 보고 여기고 싸웠듯
이제 한 단위기업의 경영권이 그와 같다고 보고 싸운다..
싸움의 문제가 문제였다면, 싸움이 해결되는가 바라보면
해결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문제의 원인을 잘못 보고, 해결방안을 찾아 나가면
해결도 되지 않고 수고는 수고대로 문제는 문제대로 더 어려워 짐을 말한다..
마치 싸우는 이들이 있다면
조각돌이 있으면 조각돌로 서로 싸우고
쇠붙이가 있으면 쇠붙이로 서로 싸우고
칼이 있으면 칼로
망치가 있으면 망치로
....
이제 총이 있으면 총으로
대포가 있으면 대포로
...
화학무기가 있으면 그것으로
핵무기와 수소폭탄이 있으면 다시 그것으로
싸우는 것과 같다.
이제 이를 보고 누군가
핵무기나 화학무기 대포 총으로 싸우니 이 모두를 없애면
서로 싸우지 않게 되리라 문제원인을 보고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이가 있을 수 있다.
과연 그런가..
역시 조각돌마저도 주위에 없다해도
모래가 있으면 모래를 뿌려 대고 싸우고
모래 마저 없으면 서로 자신의 손과 발고 머리를 사용하여 싸우고
그리고 이도 저도 없으면 서로 욕을 하면서 서로 싸우고
그마저도 못하게 되면 여전히 자신의 마음과 뜻을 가지고 싸운다..
결국 무엇이 원인으로 보고 이 해결을 구해야 하는가하면
그 최초의 원인에서 무엇을 빼고 넣고에 따라서
이 고통스럽고불행하고 악한 모습이 없어지고
또 반대로 즐겁고 행복하고 선한 반대의 모습이 나타나게 할 것인가를 관찰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일 것인가..
그래서 그것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
사실 이런 각 개인의 삶의 고통 비극 악의 문제를
처음 해결하려는 이들은 누구인가 생각하면
우리가 해결을 잘 하지 못하는 이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남기고 간 많은 성인들이라고 생각해본다.
그런데 그들은 어떤 상태에서 어떤 방안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는가..
그것은 정말 까마득한 2000년전 2500여년전
문명상태로 말하면 청동기나 철기 정도의ㅡ 상황에서
그 해결방안을 그와 같이 제시한 것이다.
그것은 황제의풍요나 권력과 명예를 빌려해결한 것이 아니고
비록 그런 지위에 있다하더라도 스스로 내려와
가장 빈곤한 거지와 같은 형태로 스스로 임해 살아가면서
사람이 스스로의 마음을 변화시켜서
이웃을 대하고 스스로의 삶의 방향을 정해
살아나감으로써 해결될 수 있음을 가르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
반대로 말하면
우리가 보는 모든 개인, 사회의 문제상황은
사실은 대단한 어떤 문명이 주어져야만 비로소 해결되는 어려운 문제라기 보다는
대부분이 헐벗고 옷도 주택도 변변치 않더라도
사실 이 모든 고통, 불행, 악의 문제를 해결할 길은
언제나 자신의 마음의 변화에서부터 가능하고 충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임하면 당장 내일 모레 죽지 않을까..
죽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임하지 않으면 평생 죽지 않고 잘 살 것인가..
그렇지도 않다.
물론 좀 오래 좀 더 건강하게 살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그 만큼 더 오래 건강한 몸으로
고통과 불행 악을 서로 주고 받고 또키워가며 머물러 산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up002///
여기까지 길게
각 생명이 각자의 입장에서 취하고 고집하게 되는
1,2,3,4의 방안이 갖는 문제를 보았다..
왜 해결방안은 제시하지 않고 이렇게 길게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가..하면
여기에는 그 해결방안이 나오지 않는 사정을 보아야 그 다음 방안의 실마리가
비로소 열리기 때문이다..
또 이는 반대로 말하면
늘 자신이 이 가운데 하나를고집하고
그 상태에서 늘 다른 입장의 상대를 늘 이기고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만 하면 되지 않는가
하는 고집이 사라지지 않으면
그 다음 해결방안의 실마리도 보이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 이는
마치 한 사자와 같은 상태를 보고 희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사자처럼 태어나 사자로 살다가 사자로 죽으면
되는 것 아닌가..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짧은 생각이라는 것이 앞에서 길게 설명한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고집이 사라지지 않으면 그 순환과정 안에 늘 머무르게 된다.
정말 그런 상태가 있다면
누군가는 가능하지 않을까..
아마 그렇게 생각해도 전체의 피라밋 구조에서
그런 지위를 잠시간이라도 누리는 이는
피라밋의 최상부 1인에 지나지 않게 된다.
나머지는 전부 그렇지 못한 관계에 남는다.
비록 자신은 어느 정도 그 상부에 있다고 생각한다해도
이 모두는 상대적으로 서로 주고받는 관계를 피할 도리가 없다..
나머지 상태에 위치한 이들의 상황을 마치 비유로 설명하면
어떤 이가 서로 다른 패들과 패싸움을 벌였는데
자신이 이가 부러지고 다리가 부러진 상태임에도
아주 신나해 한다는 상황과 같다.
비록 자신이 이가 부러지가 다리가 부러졌지만,
자신도 상대방 누군가를 붙잡아 자신보다 더 심하게
이도 부러뜨리고 다리도 부러뜨렸다고 좋아하는 어떤 이와 같다는 의미다.
부상을 당하고도 신나해 하는 이가 있다면
이 상황과 다른가..다르지 않다.
또 고통과 부상을 당하면서도 여전히 악을 멈추지 않는 이가 있다면
그 이유도 사실은 여기에 있다.
비록 내 손과 팔이 잘려져 나가지만,
그래도 나 역시 상대방의 손과 팔을 그만큼 잘려 내서 통쾌하고 기쁘고
그 바로 시원하고 통쾌함 때문에 또 다시 나서는 것이다.
교도소에 어떤 조직 깡패의 두목이 잡혀간다면
그의 생각도 이와 마찬가지다.
내가 비록 모욕과 수치를 당하고 갇히지만,
그러나 나를 따르는 이도 많고
또 내가 조금 피해를 당해도
내가 피해를 주며 즐거움을 느끼는 상대의 고통도 만만치 않다고
생각하며 만족해하는 것과 같다..
사실 그 나름대로 대단하다는 자부심마저도 갖는 경우가 많다.
이 전체적인 구조가 피라밋의 구조에서 일어난다..
과거 왕정을 생각한다면 이 피라밋을 놓고 생각한다면
누가 그런 생각들을 하고 살아갔을 것인가..
왕 1인 이외에 왕비 이하 영의정부터
말단 관리 및 양반 노예까지 다 그렇다는 것이다.
가장 밑의 노예마저도 또 다른 개나 소를 대하면서는
그처럼 대하는 것은 다르지 않다는 말도 된다.
왕이 최고의 피라밋 정점을 차지할 때
나머지는 모두 사실은 이런 착각과 환각의 최면속에 빠져
살아가는 이들과 같다.
그 가운데 가장 극상인 영의정 하나를 놓고 생각해도
그가 스스로 느끼는 자부심은대단하지 않을 것인가..
즉 비록 후대에 대부분 그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또 누구도 그를 대단하다고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 해도
그만은 스스로 그렇게 자신을 여기고 살아갔을 것 아닌가..
그러나 그가 반대자들에 의해 죽음을 당할 때는
그에게 사약을 내린 왕을 향해 절을 하고 사약을 마셔야 하는
운명이야 무엇이 달라진 것이 있는가..
그것은 사람이 노예라 하더라도 다른축생을 바라보면서
스스로 사람이라고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그러나 주인이 매를 들어 자신을 때리면
또 굴욕을 당하고 그 매를 참고 맞어야 하는 상황과
무엇이 다른가..
그래서 이들은 모두 이피라밋의 굴레와 얽힘 속박에서
하나도 자유롭지 못한 이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최고 피라밋의 정점 1인 왕은
자유로운가..
사실은 그 역시 그렇지 못하다.
비록 그가 스스로 원하는 왕비나 많은 후궁과의 즐거움과
늘 향기롭고 맛있는 음식과
기타 향연만 즐기며 살기를 원한다 할지라도
그런 것은 가능하지 않다.
싫어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매일 쌓이고
또 뜻대로 탐욕이 채워지지 않고갈증이일어나고
원치 않는 일들이 일어나 화가 밀려 오는 일들 속에서
어찌 할 바를 몰라 살아가는 것은
모든 왕들을 살펴보면 같다..
생각나는 그 어떤 왕을 놓고 바라보아도 같다.
그래서 그 피라밋의 최 정점 그 1인인 왕을 놓고
보아도 여전히 사실은 그 한 개인은 그렇게 묶여 있다는 것을 말한다.
온 천하 땅을 다 차지하고도
다시 그 옆의 조그만 땅을 하나 더 차지 하지 못해
여전히 안타까워하고
고민과 번뇌 근심 걱정에 빠져 지내는 상황은
사실은 다른 이들의 상황과 다를 바가 없다.
그 마음도 그렇지만,
그 역시 또 작은 세균과 바이러스, 질병에
고통받고 희생되어야 하는 운명이야
왕과 다른 이들이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가..
물론 그렇다 해도 왕이야 다른 이들과 달리
그 힘이 막강하여 그 뜻을 정말 자신의 뜻처럼
자유롭게 실현할 가능성이 더 많지 않은가..
그렇기는 하다지만,
만일 그 상황에서자신의 뜻을 그대로 다 관철시키고자 나서면
어떤 왕이 되는가..
바로 그 왕이 폭군이고 한마디로 연산군과 같은
왕으로 살아가고자 함과 같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만일 싫어도 참고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도 정말 옳다해도
상대의 입장을 헤아려 가며 늘 이치에 맞게 행할 노력한다면
또 반대의 왕이 될 것이다.
우리가 대부분 아는 세종대왕을 생각해보면 어떤가..
그 스스로 생각할 때 한글창제가 옳고 좋다고 여긴다해도
그를 반대하는 최만리가 이를 극구 반대해도
그가 그를 다시 어떻게 대하는가..
그런데 이는 또 반대로 무슨 상황임을 말하는가..
아무리 현명하고 또 그 지위마저도
피라밋의 최고 극점에 위치한다해도
정말 현명하고 덕이 많다면,
자신의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을 그대로 마음껏 쫒으면서
즐거움을 얻고자 할 길은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저 상대적으로 다른 이보다 조금
더 자신의 뜻을 관철시킬 힘이 있는 것처럼 보일 뿐
그 역시 자신의 뜻을 전횡해 실현시킬 도리가 없고
넓게 보아 모두가 다 굴레와 멍에에 묶여
이리저리 구속되고 끌려 다니는 상황 자체를
벗어날 길은 없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사실 이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묶임에서 풀려나오지 않는한,
이 전체 피라밋의 구조에서
번뇌와 고통 악의 순환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되기는
힘듦을 의미한다..
넓게 성군으로 칭송받는 세종대왕과
그 반대로 비난받는 연산군을 들었지만,
세종대왕은 세종대왕대로 자신의 뜻을 거슬리는 이를
상대하고 참어야 하고
아무리 한글을 만들어 반포해도
그것을 정말 그 뜻대로 널리 대부분의 사람이 사용하며
그 이익을 향수하는 모습은
사실은 즉시 즉시 이뤄진 일이라기 보다는
거의 500여년이 지난 후대에서야 이뤄진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는가..
반대로 이것 저것 따지지 않고
자신의 힘을 마음껏 행사하여
탐욕이면 탐욕, 분노면 분노를 쫒아 행한 연산군이야
그 순간은 뜻을 이룬다하지만,
그 순간이나 그후 얼마나 많은 번뇌와 고통 속에서 지냈는가..
사실 피라밋의 최고극점에 위치한 이 두 경우를 살피는 것은
피라밋의 최고극점에 오르는 것 자체가 사실상 곤란하지만,
그렇다해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각 상황마다 남아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최초에 살핀
좋음 나쁨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먼저 살펴야 한다.
////
문제야 그렇다 치고
그 해결방안은 이제 무엇을 생각할 수 있는가..
우선 앞의 1,2,3,4 가
제각각 입장에서 다 그것이 정당하고 옳다고 고집하여 나오지만,
사실은 그 자체가 문제이므로
적어도 그와 같이 행하고 고집해서는 안된다는 사실 하나만이라도
깊게 깨닫고 중지하는 것이 그 첫단계임을 의미한다.
그것이 지금까지 길게 길게 이들 관계에서 갖는 여러 문제를
살핀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도저히 이 가운데에서는 문제의 근본을 해결할 방안이 없다고
보았다면,
이제과거의 1,2,3,4를 멈추고 끊어야 함을 보게 되고
그대신 오히려 무언가를 한다면
그 반대 내용으로 나와 행해야 한다는 것을
우선 생각할 수 있다.
결국은 탐욕을 상대해 그 탐욕을 그대로 쫒아가지 말고
멈추고
오히려 넓게 생명에게 그것을 베풀려고 나와야 함을 뜻한다.
또 분노를 상대해 그 분노를 그대로 쫒아 상대를 해치면서
통쾌하고 시원함을 얻으려 하지 말고
그것을 참고, 그 불쾌와 분노를 주는 상대를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자세로 임해야 함을 의미한다.
사실 이렇게 벗어나와 반대로 행하면 행할수록
사실은 앞에서 예로 든 성군이나 성인의 모습과 가까워진다고 할 수 있다..
그 예가 흔한가 하면 우선 흔하지가 않다..
오늘날 누구라도 대부분 무소불위의 힘을 갖게 되면
어떤 방향을 쫒아 가게 마련이라고 보아야 하는가..
99.99 %는 그 방향이 아니고 원래의 1,2,3의 방향이라고 봄이 옳다.
그래서 이를 멈추고 반대 방향으로 나와 행하는 것은
드물다고 말하게 된다.
그것은 왜인가 하면
사실 이를 일관해서 여기에만 머무른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여기는 여기 나름대로 수많은 문제가 이어져 나오게 된다.
가장 기초적인 문제는
우선 그것을 행하는 이가 그것을 억지로 행하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속으로 탐욕에 차고 갈증이 쉬지 않는데
그것을 남에에 억지로 베풀고 나서
계속 스스로 불쾌에 남아 머무르는 경우의 문제다.
나머지도 같다..
참고 미움과 원망을 버리고 상대를 용서하고 사랑한다해도
그것이 그처럼 억지로 행하고 머물러 참는 가운데 의무로 행하게 된다.
그럼에도 누군가 이런 상태에 머물러한다면
그가앞의 1,2 들의 방안이 갖는 문제를 보기 때문에
그것을 취하지 않고 억지로 의무로 행하게 되는 것이지만,
그런 사정 때문에 억지로 행하는 가운데에서는
스스로 편안하지도 않고
상쾌하고 즐겁지도 않음을 의미한다..
결국 앞의 관계에서 일으키는 1, 2 등의 관계가
한 번 시원해 좋고 다시고통받는 관계를 되풀이하는 것이라면
이것을 끊고 나서는 것도
역시 한 번 참으며 힘들고 다시 이후 좋은 관계를 되풀이하는 것이어서
사실 이것만으로는 그다지 좋은 방안이 못된다는 것도 의미한다..
또 다른 문제는 이제 1,2,3을 다 버리고
이후 반대 내용대로만 내용을 취해 행해 나가려 한다면
그 혼자는 그 관계의 고통과 악에서야 벗어나온다 해도
그가 사실 앞의 1,2,3을 계속 고집해 머무르고 행하려는 이와 상대할 때는
사회적으로 여전히 다른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만다는
어려운 사정이 들어 있다.
실제로 이를 관철하면
이제 다시외관상 피라밋의 정점은 그들 가운데
누군가가 차지하고 앞의 문제상황을 또다시 반복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것이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 해결방안은 되지만,
여전히 사회적인 전체의 문제 해결방안으로는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문제를 갖는다..
그래서 앞의 1,2,3,4의 문제를 보면서
다시 그 반대되는 5,6,7의 방안을 생각하여 행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다시
이들의 각 한계를 돌파해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다시 고민해 나가야 할 필요성이 있게 된다.
///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자야할 필요성을 개인적으로 느낀다 ///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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