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Lab value
● 가치의 중립화는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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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치의 중립화는 가능한가?
이 세상에 자신 하나만 하나의 생명으로 좋고 나쁨을 판단하며 살아간다면, 다른 이와 가치 충돌이나 갈등은 없을 것이다.
그런 경우 오직 개인적으로 좋은 것 나쁜 것 가운데에서 자신에게 오래 오래 좋음을 주는 것이 곧 선과 일치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무수한 생명이 살고 있고 따라서 서로의 좋음이 충돌한다.
각 생명이 좋아하는 내용이 다르고, 그것은 시간적으로도 상황적으로 다르고 그래서 문제가 복잡하게 얽힌다.
그런데 사회 문제는 늘 이런 바탕에서 각 개인의 서로 다른 좋고 나쁨의 충돌을 어떻게 조화롭게 해결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어떤 A라는 현상을 누군가는 지극히 좋아하는데 또 누군가는 지극히 싫어한다는 현상이 곧 사회문제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래전에 MUN 님은 이렇게 각각 감성적 본능적으로 자신의 좋음을 추구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문제 유형을 1-2-3의 관계로 설명한 바 있다.
즉 누구나 감성적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좋은 내용을 추구한다. 그런데 이 경우 이로인하여 나쁨을 받아 갖는 다른 2가 있게 된다.
2는 앞의 1로 인해 나쁨을 받고 이에 대해 1에 보복 가해하고 1을 억제 제지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리고 중립 3들은 이들의 갈등 충돌을 예방하거나 사후적으로 해결하려고 잘못이 큰 가해자에게 다시 고통을 가하게 된다.
▲ 간단히 예를 들면, <레 미제라블>에 나오는 장씨 같은 이는 배가 고파 다른 사람의 빵을 훔친다. 비록 장씨에게는 좋음을 주는 그 일이 도난 당한 이에게는 당연히 불쾌와 손해를 준다. 그는 장씨를 때리고 싶어한다. 그 둘은 서로 다툰다. 이런 가운데 경찰 재판관은 체포해 벌한다...라는 식의 사회 규범관계가 성립한다.
● 이런 관계에서 무엇이 근본원인인가 하면 결국 좋고 나쁨의 서로 다른 판단이 가장 기초가 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또 각 개인이 어리석음에 기초하여 그 좋음에 집착하여 달라붙어 탐하고, 나쁨에 분노로 반응하여 끌려 간다는 사실이 근본원인이다.
● 여기서 살해 폭행 도둑질 강간과 같은 범죄를 하나의 1로 놓고 살펴 보자.
당연히 이로 피해를 받는 쪽은 2이다. 그러나 오늘날 근대 형사법체계는 2의 직접적인 보복도 범죄로 간주한다.
즉 만일 피해자가 직접 범인에게 폭행을 가하거나 살해한다면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역시 범죄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경찰이나 사법기관과 같은 공정한 3의 개입에 의해 1을 체포 처벌하는 것을 예정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사실 처음 탐욕이나 분노를 기초로 행동하는 1이 모든 문제의 시초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전에 또 다른 원인이 있다.
즉 사실 1에게 탐욕을 불러 일으키거나 분노를 일으키게 하는 그 이전의 상황이나 그 원인제공자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1의 관계는 그 원인제공자가 1의 위치에 있고 자신은 그 1에 대해 2와 같은 관계로 대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한편 이 관계를 놓고 살펴보면 2 역시 사실은 1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음도 볼 수 있다.
결국 모두가 다 각자의 입장에서 1과 같은 반응 체계로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
[사진]- [ 노르웨이 테러 현장 모습] -- 사진은 본 글과 직접 관계가 없다고 할 수는 없고 있다고 하기도 그런,,,

이들의 악한 순환 증폭의 관계가 바로 사회에 나타나는 비극의 모습이다.
쉽게 예를 들면 한 사람이 무언가로 화를 냈는데 그것을 보고 다른 사람이 다시 화를 내고
또 이로 인해 다른 사람이 화를 내는 등의 모습이 그것이다.
실제로 보복관계에서는 무슨 일로 한 사람이 죽으면, 다시 상대가 이를 이유로 그 원인이 된 상대방의 시체를 하나 그 위에 쌓아 올려놓고 시원해하고
또 이후 그 상대는 또 다른 시체를 그 위에 쌓아올리고 시원해 하고
또,,,,그래서 한 사람의 시체가 만들어 진 후 그 위에 무수한 시체를 쌓아 올리고
그것을 각자가 모두 정의의 실현이라고 생각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러나 결국 이는 비극의 확산이고, 악의 순환 증폭 현상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 1, 2를 서로 금하고 제 3자가 공정하게 이를 따져 그 중
피해자는 그대로 두고 가해행위가 심한 경우를 벌하여 이들 양자를 모두 되도록 공평하게 규율하려는 노력이 나타난다.
또는 아예 이런 가치 충돌에서 피해 벗어나려는 4의 입장이 있다.
그러나 사실 다툼에 열중하는 1, 2의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협조않는이런 4를 소극적인 적으로 보고 대하게 될 뿐
4는 이들 사이에서 자유롭지도 않고 원 문제의 해결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보다 적극적으로 원래 본능적 감성적인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 이 충돌
갈등을 해소하려는 5,6,7의 입장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탐욕이나 분노의 대상에 대해
자신이 탐욕이나 분노를 일으키지도 않고,
남이 자신에게 탐욕이나 분노를 갖게 만들지도 않고,
오직 남에게 베풀면서 남을 이런 탐욕 분노 어리석음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면서 살려고 노력한다.
이런 자세는 매우 바람직하지만,
이처럼 감성적 본능적인 충동의 방향과 반대로 행하는 이는 사실 드물다.
한편 누군가 이처럼 5,6,7의 방향을 택해서 1,2,의 반대방향으로만 일관해서 산다고 가정하면,
거꾸로 이를 기초로 다시 이를 악용하려는 이가 나타난다.
즉 누군가 자신을 괴롭히고 가해를 해도 오직 참고 미움과 원망을 버리고 용서와 사랑만으로 대한다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억어지를 피우고 자신의 악을 보다 강화하는 이도 나타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결국 그런 상대를 방편으로 5,6,7의 방향으로 돌리기 위해서라도
다시 1,2,3의 방편을 더 극단적으로 택해야 할 필요도 나타나게 된다.
원래 방편이든 원래 목적이 그렇든
1, 2, 3은 각기 그 상대에게 방향을 돌려 5,6,7로 나아가게 하는 힘도 갖는다.
즉 1이 극단적이면, 앞의 원인이나, 2에게 5,6,7의 방향이 필요함을 알려준다.
또 2가 극단적이거나, 3이 극단적일 때도 같은 효과를 갖는다.
마치 싸움을 벌인 학생의 버릇을 고치기 위하여 선생님이 두 학생을 지독하게 폭행해
이들의 버릇을 고친다는 예가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사실은 무엇이나 참고 사랑해 주는 보호자 밑에서
오히려 매번 억어지만 피우는 말썽꾸러기가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를 방편으로 고치기 위해 나타나는 방편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래서 비록 5,6,7의 방향이 바람직하지만,
다시 이런 억어지 형의 1, 2, 3에 대해 다시 방편으로라도
같이 더 극단적인 1,2,3으로 나가야 할 필요도 있게 된다.
방편과 진짜의 구별이 문제지만, 어느 경우나,
극도의 1은 그 원인제공자에게 그런 1을 유발시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또 극도의 2는 다시 1에게 그런 1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게 된다.
극도의 3도 결국 같은 효과를 갖는다.
그러나 방편이 아니고 그 자체가 목적인 경우는 사실
앞의 1, 2나 그런 자신이나 별로 내용이 다르지 않다.
그래서 역시 결함을 갖는다.
● 어떤 방안이 가장 바람직한가 하면,
비록 현실적 가능성은 드물지만, 역시 5,6,7의 방안에 도달하여
머물러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그러나 현실의 모습은 어떠한가 하면 1,2의 충돌이고
또 제각각 1을 고집하면서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여기에 누군가 개입하려고 할 때 가치의 중립이 가능할 것인가?
여기에 불교에서 가장 이상적인 왕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전륜성왕의 고민이 나타난다.
어느날 그 왕에게 매에게 쫒기는 비둘기가 나타나 보호를 요청한 적이 있다고 한다.
왕은 그를 보호해주려고 하나, 매는 그 앞에 나타나, 자신이 비둘기를 잡아 먹지 않으면
자신이 죽게 되니, 비둘기를 자신에게 주거나 아니면 자신에게 동일한 무게의 피와 살고기를 달라고 한다.
전륜성왕은 자신에게 보호를 요청한 비둘기를 매에게 줄 수 없어 자신의 살을 그만큼 베어 준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야기속의 전륜성왕을 그로 인해 죽지도 않고 다시 살이 돋아 나왔다고 하지만,
현실에서 누가 이렇게 할 수 있고 한 번은 한다고 해도,
또 어떻게 세상의 모든 문제를 이런 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그래도 여기에서 그 방안의 시초를 찾아야 한다고 본다.
자칫 자신이 비둘기를 보호해준다고 매를 잡아 죽인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것은 또 다른 악일 뿐이다.
이에 관련한 이야기는 치악산의 전설과 관련한다.
선비가 까치를 잡아 먹으려는 뱀을 죽여서 까치를 구해주고 까치는 다시
종에 부딪혀 죽음으로써 은혜를 갚았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이런 선비처럼 어리석음을 범하면 결국 피해가 많아지고
악화된다는 교훈을 준다.
원래 뱀이 까치를 잡아 먹고 까치는 또 다른 벌레를 잡아 먹는다.
그런데 선비가 공연히 개입하여, 뱀도 죽이고 까치도 죽게하고
자신도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이를 선비의 약자 보호 사랑 정신, 까치의 보은 정신으로
해석하는 입장도 있겠지만,
그러나 원래 그대로 방치한 것과 비교하여 좋음이 더 나타나지도 않고
공연히 피해만 확산되고 비극의 결과만 더 많아진 것은 아닌가.
그래서 전륜성왕의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까치를 보호해줄 때 까치가 또 다른 가해자로 행하지는 않는가.
까치도 다른 생명을 잡아 먹고 산다 할 때 뱀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이들의 다툼에 개입할 때 개입하지 않은 것과는 어떤 좋음이 더 증가하는가?
등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우리가 보는 현상은 생태계의 약육강식의 모습이어서
모두 살아가는 데 다른 이의 죽음 고통이 전제되어서 전개되어 나간다.
그래서 삶의 원리는 이것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살기 쉽다.
그런 전제에서는 오직 자신이 살아가는 한
약육강식의 관계에서
남을 해치고 자신이 생존할 수 있는 힘 자체가 강한 것만이
오직 자신의 삶의 정당성을 확보해주는 원리로 생각하며 살기 쉽다.
그러나 그런 원리로 살아가는 축생의 무리에 속하는 생명의 수가 한없이 많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의 원리로 생을 살아가는 생명도 있다.
물론 우리가 보는 생태계 내애서는
식물 정도만 이런 비난에서 자유롭다.
이들은 최초에 고통을 느끼지 않는 무기물을 기초로 삶을 형성하며 살아가고
또 다른 생명체의 삶에 기초가 되어주며 베풀기 때문이다.
그외 나머지 생명체들은 생태계에서
바이러스부터 사자까지 모두 다른 존재의 죽음, 파괴를 기초로 생을 유지해 나간다.
그러나 아무리 이들의 숫자가 많고
그 반대의 원리로 살아가는 이의 숫자는 적고
현실에서 찾기 힘들다 해도
그 반대의 원리로 살아가는 이가 있다.
그래서 축생의 약육강식의 관계가 그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행동원리이고
또 그런 축생의 무리가 대단히 많다 해도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그 무리에 들어가려 하지 않고 벗어 나오려고 할 때는
결국 앞의 전륜성왕의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기초로
현실적인 고민을 시작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본다.
좋고 나쁨의 가치가 서로 충돌하고
그래서 한 a라는 현상에서 모두 동일하게 좋음을 얻지 못한다는
기본 문제 상황에서
.... 어떤 방안이 가장 바람직한가의 고민은 그래서 필요한 것이라고 본다.
● {최초 주제도입으로 의문제기- 논의할 주제를 처음 제시 하는 부분}
○ {간단한 결론제시-함축적 결론,격언적 제시, 부분}
▼ {독자나 상대방 입장에서 주제가 도출되는 내용}
▽ {독자나 상대방 입장에서 주제가 도출되는 자세한 과정 내용}
▲ {주제 결론의 객관적인 장단점}
△ {사례나 비유 이야기 형식의 글}
■ {주제에 대한 부가적 설명 도입}
□ {주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의 실질적 내용}
★ {논증 또는 비판하고자 하는 내용}
☆ {실질적 논증 부분}
∴ {최종 결론}
[자세한설명] {백과사전이나 일반 논문 내용} [설명끝]
[주석] {인용한 책 참고 논문 등} [주석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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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1-07-토-23-[29weeks 204 days]-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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