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요약 ] ○ 좋음의 충돌문제 |
○ 세상의 문제는 결국 좋음의 충돌 문제다.
눈을 떠 바라보면 좋은 것, 나쁜 것,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것으로 나누어진다.
좋은 것에는 탐욕을 갖고 집착하게 되는데, 탐욕이 무한하고 성취되지 않기에 불쾌가 일어난다.
나쁜 것에는 또 분노를 갖게 되는데, 분노가 풀리지 않기에 불쾌가 일어난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은 서로의 반대면이어서 서로 반대 관계도 갖는다.
즉, 좋은 것이 성취되지 않으면, 불쾌와 분노가 일어나 화가 난다.
나쁜 것이 분노를 통해 해소되면, 만족이 얻어지는 것도 그런 반대관계다.
결국 이들은 모두 좋음의 문제다.
○ 그래서 이 좋음을 어떻게 얻어야 하는가가 문제된다.
좋음과 나쁨이 서로충돌하고,
이들은시간적으로도 충돌하고,
각 주체마다 서로 충돌한다.
지금 좋음을 주는 것은 그로 인해 나중에 나쁨을 받기도 하고 [시간적]
내게 좋음을 주는 상태는 다른 이들에게 나쁨을 주기도 하고 [주체간 ]
그 반대도 성립하고,
또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고 형태가 다양하다.
그래서 지금 주어지는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모든 주체에게 그리고 자기자신에게 오래오래 좋음이 얻어질 수 있는가가 어려운 문제가 된다.
사람이 노력하는 것도 결국 이 문제이고 다른 생명도 결국 이 좋음 때문에 분주하다.
그리고 좋음을 주는 것의 정체가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그 좋음을 여러 주체에게 많이 오래 오래 얻게 줄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의 문제가
기본적으로 모든 방면에 깔려 있다.
○ 사람을 포함하여 모든 생명은 우선적으로 당면한 좋음에 이끌려 추구해나간다.
이는 각 생명이 본능적으로 감성적으로 좋은 것을 추구하여 행동해나감을 의미한다.
반대로 싫음 나쁨을 피하려 하고 그것에 화를 내고 공격하는 것도 같다.
결국 그것은 다른 형태로 좋음과 관련한 문제다.
어떤 사람만 특별히 그런 것이 아니고, 미생물부터 성인까지 모두 그것을 추구한다.
단지 성인이 다른 점이 있다면
모든 생명에게 오랜 좋음을 주는 것을 올바르게 추구하는 점에서
미물과 차이가 있을 뿐이다.
>>>
○ 이렇게 각 주체가 본능적 감성적으로 좋음에 이끌려
탐욕을 추구하고, 분노를 일으키는데 그것을 일찍이 mun님이 1 이라는 숫자로 표현했다.
온 세상의 생명들이 이 1을 기초로 살고,
그런 결과 나중의 또 다른 자신으로서 1,
또는 다른 상대방인 또 다른 1들과 충돌한다.
○ 그렇게 각기 이 1을 기초로 살면서,
다른 1과 충돌하게 되면
이제 그것을 기초로 어느 주체는 2로 변한다.
예를 들어 자신이 마시려는 물을 누군가 빼앗아 먹는다면,
물을 마시려 한 자신과,
그 물을 빼앗아 먹으려 한 상대는 모두 처음에는 각기 1의 입장에 있다.
그런데 뺏긴 어느 일방은 화를 내며 상대를 공격하고 해하려 하게 된다.
이 두번째 단계를 2 로 볼 수 있다.
그것은 그가 갖는 1을 기초로 하기 때문에 결국 같은 1과 1의 충돌이라고 볼 수도 있다.
○ 이 들이 서로 부딪혀 싸우기 때문에
제 3 자가 그 가운데 문제를 일으킨 이들 사이에 개입하여 이 둘 모두 또는 이 둘 가운데 어느 하나를 벌하게 된다.
여기에는 이렇게 부딪히는 입장 들간에서 어느 한쪽이 그것을 중지해야 한다는 생각을 기초로 한다.
즉 이 가운데 사회적으로 어느 하나를 표준적인 내용으로 인정하고
나머지는 불법적인 내용으로 금지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 둘을 다 불법적인 내용으로 금지하기도 하는 것이다.
○ 한편 사회에서는 서로 팽팽한 둘이 부딪혀 충돌하기에,
이 둘 사이에 개입하지 않고
그저 모든 충돌문제에서 벗어나 떠나려는 입장이 나타난다.
그것을 mun님이 4 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4의 입장이 성공적이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앞의 1-2-3 간의 문제를 방치함으로써
그것이 해결되지도 않고 또 예방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이들의 문제는 4도 함께 그 결과를 받게 된다.
그리고 이런 가운데 세상은 복잡하고 시끄럽게 돌아간다.
이처럼 좋음이 서로 충돌할 때.
그것은 결국
좋음을 차지한 이가 그것을 지키고 유지하려 하고
다른 이는 그 좋음을 훔치거나 빼앗으려 하고,
또 어떤 이는 자신이 좋음을 위해 상대에게 불쾌를 주고,
또 불쾌를 받은 이는 이 불쾌를 받고 분노하고 상대에게 되갚아 주려는 반응으로 나타난다.
이들이 서로 돌고 돌아 서로에게 끝없이 가해를 하는 것을 방치하면
사회의 문제가 악화되고 증가하므로,
공정한 제 3자가 개입하고 이들의 다툼에 개입한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를 보호하고
다른 쪽을 억제하거나 처벌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 그런데 성인의 가르침은 사회가 취하는 내용과는 조금 다르다.
앞의 경우에
좋음을 차지한 이에게는 그 좋음을 다른 이에게도 널리 베풀라고 요구하고
또 좋음을 훔치거나 빼앗으려는 이에게는 남이 스스로 주지 않은 것을 함부로 훔치거나 빼앗지 말라고 한다.
불쾌나 고통을 다른 이에게 가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한편 불쾌나 고통을 가하는 원수를 거꾸로 용서하고 사랑하라고도 가르친다.
사실 이런 요구는 앞의 좋음이 충돌하는 경우에 대하여
양쪽에게 그와는 반대의 방향으로 각기 행할 것을 제시하는 것이 된다.
물론 이들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그 요구를 받아들인다면,
앞 각각의 경우에 충돌은 일어나지 않는다.
장발쟝은 훔쳤는데 그러나 신부는 장발쟝에게 준 것이라고 함으로써,
그런 문제가 원래 없었던 상태로 되는 것이다.
물론 장발쟝이 훔치지 않는다고 하는 경우에도 문제는 없다.
한쪽은 훔치지 않고 한쪽은 베푸는 경우에도 역시 문제는 없다.
또 어떤 이가 가해를 했는데 정작 피해자는 상대가 가해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 경우에도 또 역시 문제는 없었던 상태가 된다.
이 경우도 물론 상대가 가해 자체를 하지 않는 경우는 역시 문제가 없다.
한쪽이 가해를 하지 않고 다른 쪽이 역시 상대를 사랑하는 경우에도 역시 문제는 없다.
그래서 사실 성인이 가르치는 요구를
어느 일방만이라도 받아들여서 행한다면,
앞에서 본 사회적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는
결국 양쪽이 모두 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충돌하는 경우이다.
● 그래서 만일 처음 1과 2 둘 중
어느 하나라도 충돌하는 방향과는 반대로 행동한다면,
원천적으로 충돌하지 않게 될 것이다. -라고 볼 수 있다.
○ 그래서 원칙적으로 그와 같이 권유하게 되고
그렇게 권유하게 되는 1과 2 와는 반대로 행하는 입장을 각기 5와 6으로 제시한다.
○ 그러나 처음 1과 2의 입장에 서 있던 이는 쉽게 그렇게 되지 못한다.
앞의 1과 2가 각각의 입장에서 가장 본능적으로 감성적으로 이끌려지는 것인데,
그것과 반대로 행해 문제를 해결하라는 요구가 너무 실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배고파 밥가지고 서로 다툼을 일으키는 이들에게
각기 밥을 먹지 말고 참으라고 요구한다던지,
또는 자신의 밥을 훔쳐 먹어도 그저 참고 용서하라는 요구 등이
각자의 입장에서는 다 따르기 힘든 요구가 된다.
그래서 잘 받아들여지지 않게 된다.
○그러니 문제해결은 어렵고 세상은 이를 기초로 늘 복잡하고 시끄럽게 돌아가기 마련이다.
앞에서 mun님이 멍에, 소 코뚜레의 이야기를 했는데
모든 생명은 그렇게 사실 소 코 뚜레에 꿰인 소처럼,
본능적으로 감성적으로 좋게 느껴지는 것과 나쁘게 느껴지는 것, 어리석음에 의해
이끌려 다니게끔 되어 있다.
그러므로, 모든 생명은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이라는 코 뚜레에 코가 꿰여
이에 이끌려 다니고 벗어나지 못하는상태라고 비유할 수도 있다.
코 뚜레가 꿰인 소가 그 상태에서 그것을 끊고 나올 수 있을 것인가.
아마 어려울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본능적으로 감성적으로 좋음을 느끼고 분노를 일으키는 것들에서
한 생명이나 사람이, 그것을 쉽게 거부하고 벗어나올 수 있을 것인가.
또 화가 나고 미워하는 마음이 일어날 때
여기에서 쉽게 벗어나올 수 있을 것인가.
소가 소 코뚜레를 끊고 벗어나옴이 힘들다고 보듯,
사람 역시 마찬가지로 힘들다.
○ 앞의 1-2-3-4의 방안과는 반대로
앞의 감성적 본능적 요구를 따르지 말고 중지하고,
각기 모두 그와는 반대 방향으로 행하라는 요구는
본능과 감성적 요구를 거스르는 것이어서 각 개인에게서
실천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
○ 또한 그 반대방향으로 행하는 경우에도 일부의 부작용은 있다.
즉 앞의 1-2-3-4의 내용이 이로 인해 교정이 되지 못하고
더욱 증대되거나 심화되는 부작용도 예상할 수 있다.
원래 1-2-3-4의 관계는
어떤 하나의 악이 있을 때 다시 이에 악을 가하여
그 하나의 악을 억제하고 예방하는 기능이 있다.
그래서 이들이 위처럼 서로 관계할 때
서로가 서로의 악을 서로 규제하고 억누르는 효과를 발휘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위 관계에서
어느 일방이 그것을 중지하고 반대 방향으로 나올 때
상대방의 악을 억누르고 규제하는 기능이 여기서 발휘되지 못하고
그래서 더욱 그 악이 심화되고 증대될 수도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들어
말썽을 피우는 아이를 오직 사랑으로만 대한다고 할 때
그 아이가 끝없이 말썽을 더 피우고 또 매번 요구가
많아지고 심해진다고 걱정하는 부모의 입장과 같은 경우를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 한편 1-2-3-4를 벗어나 반대로 행하는 경우에 있어서도
그것이 오로지 신앙의 계율을 따른다거나,
도덕적 규범의식에 의해 의무적으로 행한다는 경우에서는
앞의 1-2-3-4에서와 같은 문제를 역시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앞의 1-2-3-4는,
그것이 상대의 악을 서로 악을 통해 억누르는 기능을 갖지만,
서로가 악하며 서로가 그로 인해 선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문제점을 갖는다.
1-2-3-4를 벗어나 반대로 행하는 경우에는
그것이 선한 방향으로 나온 것이지만,
그러나 자칫 그 선을 의무적인 선으로
즉 하기는 싫으나 마지못해 규범에 따르는 선으로
행하기 쉽다.
그것은 선이지만, 개인에게는 불쾌를 가져다 주는
요구가 된다.
이는 어떻게 보면
1-2-3-4가 서로의 악을 억제하는 기능을 할 때
각 주체가 원래 예상되는 본능적 반응을 억지로 억제시키는 관계처럼,
반대방향의 반응을 억지로 행하는 관계처럼 된다.
그래서 사실은 이런 상태만으로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즉 그 취지와 이유를 깨닫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희망과 의지로
이를 즐겁게 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 한편 1-2-3-4의 단계를 벗어난 각 개인들이 있는 경우
이들 간에도 또 다른 형태의 충돌을 예상할 수 있다.
예를들어
하나의 좋은 것을 놓고 서로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원리를 받아들인 둘이
이 것을 끝없이 상대가 차지한다고 양보함으로써
오히려 충돌을 일으키는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 그래서 이런 경우에 이런 부작용과 문제점들을 해결할 방안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결국 앞의 1-2-3-4를 벗어나지만,
오로지 기계적으로 반대로 행하여 선을 실현한다는 것은
이 선의 목적 취지를 이해하여
자신과 상대 그리고 모든 이에게 오랜 좋음을 주고
모두가 최상의 상태에 이르고자 하는
목적을 기준으로 놓고
구체적인 경우에
어떻게 하는 것이 보다 이에 가까울 수 있는가하는
점에서 구체적인 선택 판단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래서 이런 목적과 취지를 바탕으로 놓고
기본적으로 1-2-3-4에 집착하여
본능적으로 감성적으로 이끌려 행위하는 단계를 벗어나고
모두를 최상의 상태로 향하게 하고 이끈다는 근본 취지에
바탕한 가운데
그 때 그 때 상황에 맞게 취해
앞의 1-6에 나열된 여러 방안 가운데
그 목적의 실현에 가장 좋은 방안을
그 때 그 때 잘 선택해 실현해 나가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그것을 7단계로 제시해 보기로 하자.
● 7의 방안:
○ 7 단계는
모두를 최상의 상태로 향하게 하고 이끈다는 근본 취지에
바탕한 가운데
그 때 그 때 상황에 맞게 취해
앞의 1-6에 나열된 여러 방안 가운데
모두를 최상의 상태에 도달하게 한다는 목적의 실현에 가장 좋은 방안을
그 본 취지에 맞추어 알맞게 잘 선택해 행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무엇보다도 본 목적이 앞의 단계와 다르다는 점에서
구별의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특히 1-2-3-4를 벗어나야 한다고 할 때
5, 6의 방안을 기계적으로 택한다거나,
또는 1-2-3-4의 방안으로 행하지 않는 것이
스스로 행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상대에 의해 억눌리거나,
규범의식에 억눌려 자신이 하지 '못하는' 상태와는 구별된다.
즉 1-2-3-4-5-6 의 여러가지 방안을
모두 할 려면 할 수 있으나,
앞의 근본적 목적 취지에 맞추어
어느 것이 가장 좋고 바람직한 것인가를 판단해
취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경우의 선택방향을
각기 8과 9라고 제시할 수 있는데
이 8과 9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즉 1을 놓고 볼 때 1을 한다면 가장 잘 할 수 있고
또 1의 반대 방향이 5을 놓고 본다면 5를 가장 잘 할 수 있는데
이 1과 5를 모두 잘 할 수 있으면서
이 가운데 무엇을 구체적인 경우에 취해 행할 것인가는
앞의 근본목적- 즉 모두가 최상의 상태에 이르게 한다-는 목적에 비춰
선택하여 즐겁게 잘 행하는 단계를 8로 표현할 수 있다는 의미다.
9도 같이 말할 수 있다.
상대의 1에 대하여 취할 수 있는 방안으로
2와 6을 생각할 수 있는데
이 모두를 다 잘할 수 있지만,
역시 앞의 근본목적에 취해 하나를 선택하여
즐겁게 잘 행하는 단계를 9라고 말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7 단계 이후부터는
이런 여러가지 방안을 그 때 그 때 잘 판단해
즐겁게 잘 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할 것이다.
즉 7단계란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이지,
할 수 없어서 하지 못하는 단계가 아니다.
또 무언가를 한다면
그것이 앞의 목적에 비추어 가장 좋기 때문에 하는 것이지
어쩔 수 없어서 그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최고의 무술 고수가
상대와 싸워 이길 것인가.
질 것인가를 오직
자신과 상대 그리고 모두를 위해
어떤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인가를 판단해
선택하고 그것을 즐겁게 잘 행하는 상태와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처음부터 그저 아무 실력이 없어서
오로지 상대의 가해를 묵묵히 수용할 수 밖에는 없어서
싫지만 그저 참는 상태와는 다르다.
또는 그저 참을성이 약해서
무조건 상대의 가해에 반응하여
상대와 다투려 뛰쳐나가는 상태와도 또 다르다.
결국 7단계는 앞의 여러 방안의 반응 단계의 장단점을 헤아려
모두를 최상의 상태로 이끄는 데
취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가를 잘 판단하고
그래서 그것을 즐겁게 잘 해나가는 단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7 단계 이후에서 취할 수 있는 방안
○ 우선 여기에는 기존의 1-2-3-4의 단계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한데
직접 이해 당사자들은 곧바로 여기에서 벗어나오는 것이 쉽지 않다.
현재 각자가 그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것을 베풀지 않는 이는 그것이 주는 좋음에 깊게 집착하고
이것을 빼앗거나 훔치려는 이도 마찬가지다.
또 자신의 좋음을 위해 불쾌를 주는 이도 그와 같고
또 상대가 주는 불쾌로 인해 분노하고
그 상대에게 보복하고 가해하려는 이도 또 마찬가지다.
그래서 사실 좀 더 쉬운 것은
당장 좋음이나 나쁨에 관계하는 직접 당사자가 아닌 상태에
놓여 있는 제 3자들부터
이 관계에서 벗어나오는 것이라고보게 된다.
그런데 결국 이들은
자신부터 기본적으로 그런 1, 2, 3, 4의 상태에서부터 벗어나고
남도 벗어나게 해야 하는 길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결국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또 적어도 각 주체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방향으로 행하지 않도록
잘 이끌줄 알아야 함을의미한다.
간단히 보면 1과 2의 원리로 행하는 각 주체를
우선 5와 6으로 이끌어야 한다.
더 나아가 과거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함께 개입하거나 방관하여 문제를 만드는데
기여한 3과 4 도
함께 변화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따라서 자신이 5와 6을 쉽게 행하면서
1과 2의 충돌을 일으키는 이들과
더 나아가 3, 4의 방안을 취하는 이들까지
모두 그 상태에서 벗어나와 좋음을 누리게 이끌 수 있는 방안을
7 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 그 7 이 취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들이 있는가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우선, 처음 1과 2의 관계에서
그 둘이나 그 가운데
누군가를 벌하고 가해하는 방식으로 억제하고 눌러서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을 벗어나야 한다.
앞의 1-2-3-4는
하나의 나쁨이 발생하면 그 나쁨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또 다른 나쁨을 얹어 놓아
앞의 나쁨이 해결되었다고 생각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나아가 미래의 나쁨이 예방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이 잘못이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아무리 나쁨을 하나의 나쁨 위에 덧 씌운다고 해도
처음의 나쁨은 없어지지 않는다.
또 미래의 나쁨이 예방되는 것은
새로 가하는 나쁨에 의해 억눌려 있는 것만을 의미할 뿐이다.
그래서 그 억누르는 힘이 약해지는 상황에서는
그것은 다시 반복해서 나타나는 내용이 된다.
결국 예방은 불완전한 것이어서,
그것을 억누르는 동안,
상대나 자신이 선한 방향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그것은 또 다른 나쁨을 결국 불러 일으키는 결과가 된다.
그래서 이런 관계를 먼저 인식해서
우선 1-2-3-4의 단계에서 벗어나오는 것이 필요하다.
● 그런데 7의 입장에서,
1과 2의 입장으로 서로 대립해 다투고 있는 이들을 상대로
어떻게 5, 6의 방향으로 이끌어 나올 수 있을 것인가.
우선 그러기 위해서는,
각각의 1, 2의 추구 ( 본능적 감성적 이끌림)를 인정하고
그것을 시인해 줘야 할 필요도있다.
어떻게 보면 1과 2는 5와 6과는 반대의 내용인데,
그러나 처음 1과 2가 전혀
나쁨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하나의 좋음을 놓고 그것을 향하고 추구하는 것은
예를 들어
배 고픈 이가 밥을 먹는 것,
젊은이가 이성을 사랑하는 것,[1]과 같은 경우인데,
거기에는 당연히 좋음이 있기에
대부분이 이끌려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본능이고 감성인 것이다.
또 반대의 2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좋음이 침해당하고
나쁨을 받게 될 때,
불쾌를 느끼고 분노하고
그 상대에게 가해하려는 반응도 앞과 같이
일종의 본능이고 감성적 반응이다.
그래서 [1]의 단계 및
이와 대립해 불쾌해하고 분노하는 것 등등[2]이 모두 그렇다.
생명의 거의 대부분 살아가면서 가장 먼저 이끌리고
반응해나가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리고 거기에는 그렇게 이끌리게 되는
좋음의 원리가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이 좋음을 완전히 부정하고,
오로지 금하고 억제할 수만은 없다.
한편, 모든 문제를 각 주체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 외에 다른 것이 보이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벗어나기 어렵다는 사정도 있다.
따라서 이를 먼저 감안해 주어야 한다.
● 그런데 왜 억제하고 반대 방향으로 행해야 하는가.
앞처럼 본능적 감성적으로
그것이 당장 좋게 느껴지는 것이 분명한데도
그러나 그래도 그런 반응에서 벗어나와야 함은
거기에 함께 들어 있는 나쁜 측면 때문이다.
이는 어떻게 보면 서로 관계하여
다툼으로써 일어나는 나쁜 결과과
그런 형태로 반응하는 것을
억제하고 금해야 하는 이유라고 할 수도 있다.
또 반대로 말하면
원래 추구하던 좋음을 다른 부작용이 가장 적게
그것을 얻는 방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대는 우선 당장의 본능적 감성적 요구에
집착하고 이끌려져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당연히 그 주체의 입장에서는
이끌리고 집착할 수 밖에 없는 좋음이 들어 있다.
한편, 모든 문제를 각 주체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 외에 다른 것이 보이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벗어나기 어렵다는 사정도 있다.
따라서 이를 먼저 감안해 주어야 한다.
따라서 그런 상황에서 상대가 그 상태를 벗어나게 하려면,
우선 상대와 같은 입장에 들어가 공감하는 가운데
같은 원리로 그 상황을보고
그런 바탕에서 그 상대를 이끌어 벗어나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보다 쉽게 상대를 그 1, 2의 상태에서 벗어나오게 할 수 있다.
이는 한편으론 상대의 입장과 이유를 공감하지만,
그러나 상대와 똑같이 그 1,2 상태에 머물지는 않고
상대를 5,6의 상태로 이끌어 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앞에서 살핀 1과 2의 방안이 일부분 좋은 점이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공감은 하지만,
그러나 그런 방안이 가져오는 또 다른 나쁨이 있기 때문에
상대를 5와 6으로 이끌어 내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각 주체가 각기 집착하는 각각의 1과 2는
그에게 본능적으로 감성적으로 가장 좋음을 많이 주는 절실한 요구다.
따라서 무조건 그것을 금하기만 하고,
그것을 비난하기만 해서는 오히려 더 역효과가 난다.
따라서 1과 2 각각의 요구를 극단적으로 배제하는 것이 절대적 목표는 아니다.
그것이 배제되고 억제되어야 할 이유는
오직 그것이 '모든 생명에게 오랜' 좋음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본능적 감성적 좋음을 주지만,
그 필연적 결과와 부작용으로 ' 나쁨'을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처럼 좋음과 나쁨이 서로 충돌하고 섞여 있기 때문에
금하고 억제시킨 것이지,
본래 그 자체가 나쁨의 실체라고 보기 때문은 아니다.
모든 것은 그렇게 좋음 나쁨이 섞여 있는데,
나쁜 면을 없애기 위해서 그것을 금한 것이므로,
일단 그 안에 담긴 좋은 부분은 긍정하고 시인해 줘야 할 필요가 있다.
이제 그런 상태에서 충돌하는 1, 2, 3, 4 들을
모두 5,6,7 의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그런데 이 5,6,7이란 방안도
결국 좋음을 추구하기 위해서 마련된 것이다.
따라서 사실은처음 1,과 2와 추구하는 방향 자체는 다르지 않다.
단지 그것은 당장의 좋음이 아니라,
'모든 생명에게 오랜' 좋음을 주는 방향을 향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즉, 그것은 처음 본능적 감성적으로 택하는 1, 2와는 달리,
각 주체에게 더 많고 더 오랜 좋음을 주는 것만이 다르다.
단지 1, 2 의 상태에서는
그 5, 6 이 우선 당장 본능적 감성적으로 좋음을 주지 않고
또 거리가 멀기에 쉽게 이해하여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뿐이다.
그래서 당장 본능적 감성적 요구에 집착해 이끌려 가는 이에게
그들이 각기 집착하는 것들을 한편으로 시인해 주며,
그 바탕에서 그것도 주고
다시 그 외에 더 많고 오랜 좋음을 줄 방안을 깨닫게 해서
그들을 5, 6 의 상태로 이끌어 들여야 한다.
○ 1과 2의 사이에 개입하는 이들이
그렇게 상대를 이끌어 들이지 못하면,
그들은 결국 3과 4의 상태에 머물게 된다.
즉 비난하면서 벌하거나,
모른 체 방관하거나 할 도리 밖에는 없게 됨을 의미한다.
이는 스스로도 이 1과 2의 충돌을 모두 좋게 해결할 방안을
생각해 내지 못하고
만들어 내지 못하고 그래서 이끌어들이지도 못하는 상태이다.
○ 결국 7의 단계가 되려면,
그렇게 자신과 다른 모든 생명의 문제를
해결할 방안과 상태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7이 이런 목적으로
모두를 5, 6, 7 이상의 상태로
이끌어 좋은 상태가 되게 하려면,
다시 앞에서 제시한
8 과 9의 새로운 방안을 취할 필요가 있게 된다.
그 이유는 우선 1과 2의 충돌관계에서
단지, 3의 방안이나,4의 방안
또는 5, 6, 7 방안만으로
해결이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 이 복잡한 단계들은 모두 좋음 때문에 일어난다.
사실 이런 좋음의 문제에서 가장 직선적이고 쉽게,
사람들이 대부분 취하는 본능적인 1과 2의 방안으로 해결될 수 없는가가
기본적 의문일 수 있다.
즉, 배고픈데 왜 저것을 당장 먹으면 안 되는가.
미운데 왜 당장 때리면 안 되는가...등등의 의문이 그것이다.
그것은 당장 그것을 행해 나가면
곧바로 그 결과로 만나게 되는 일들이 좋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독과 부작용이 나타나는 좋음이고
얻은 좋음보다 더 많은 나쁨을 얻게 되는 좋음이고,
그래서 비유하면 독이 들어 있는 음식과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부작용, 나쁨, 독을 제거하고
순수하게 좋음만을 자신과 남이 함께 오래 오래 많이 얻게 하는,
더 나은 방안
또 더 나은 방안
또또 더더 나은 방안들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만일 부작용과 나쁨과 독을 전혀 없게 하려면
사실 이 이상의 단계가 무한히 필요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외관상 당사자간에서 취할 수 있는 방안이란
당장의 욕심의 추구 실현 ~ 또는 포기 무시 외면 등에서의 선택이다.
따라서,1과 2, 아니면 5와 6 의모습이 된다.
그런데 이런 외관을 취하게 된 그 목적과 수단의 실질적 의미까지 검토하면,
앞의 단계와는 또 다른 8과 9들의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이처럼 단계를 벌여 세우고,
이런 방안들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보게 된다.
□
이 문제를 처음의 문제
즉, 배가 고픈데 어떻게 안 먹고 참을 수 있는가의문제를 놓고생각해보자.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 참는다면
그렇게 참는 이는 여러 이유로 참게 된다.
이타적인 이유,
계율, 사랑...등등의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조금씩 한계를 갖게 된다.
현실적 한계는
빵이 하나 밖에 없는데 사람은 많아서,
누군가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거나,
또는 자신은 사랑하는데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유 등이,
한계를 만들게 된다.
그런데 이런 한계 때문에
앞에서 살핀 5.6.7.8,9 등의 방안은 역시 한계를 맞이하고
불완전한 방안이 되기 쉽다.
그렇게 되서는 안되고
결국 이 한계를 벗어나와야 할 필요가 있다.
○ 그런데
결국 이런 모든 한계를 초극해 벗어나오려면,
결국 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깨달아야 함을 보게 된다.
만일 빵과 배고픔이 문제될 때
누군가 눈 앞에 보이는 빵이나,
배고픔을 느끼는 자신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그런 가운데 빵이나, 삶에 대한 욕구,
그리고 죽음에 대한 상대와 똑같이 두려움을 느끼며,
똑같이 빵과 삶에 집착을 갖고
그런 목표에 집착해 벗어나지 못한 상태라면,
이 문제의 한계는 너무 빨리 만나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보는 대상의 정체의 내용에 대한
생각과 집착이 옳다면,
사실 앞에 나열한 그런 방안 외에,
별다른 해결방안이 없음을 의미하게 된다.
유감스럽지만, 그런 한계에서는
그 한계 안에서의 양보와 절제만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남에게 베풀고 남을 살리지만,
우선 나부터 살고 난 다음에 남에게 베풀고 살린다는 식이 된다.
그래서 한계가 있게 된다.
○ 문제 해결의 수단에서도 같다.
살아갈 수 있는 방안과 배부를 수 있는 방안에서
지금 부딪히는 그 방안밖에 없다면
그것이 한계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이 경우에도 역시 앞과 같은 어려움에 쉽게 부딛히고 만다.
○ 그런데 현실에서 다투고 대립하는 1과 2는 어떠한가.
대부분 서로가 더 물러날 수 없다고 절박하게 느끼고 그 상태에서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그처럼 다른 탈출구가 없다고 서로 느끼면서 대부분 대립한다.
그리고 모든 대립의 현장이 그와 같다.
● 그런데 진실은 어떠한가 하면 그렇지 않다.
진실에는 그런 한계는 없다.
그러니 문제가 풀려질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앞의 한계 상황에서 벗어나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현실에서 한계를 만들어 내는 여러 상황에 대해
그 근본적 진리의 내용을 잘 이해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현상은 본래 영원하지 않다.
영원불변한 본체는 없다.
현상을 나타나게하는 실재내용들은 그 내용을 얻을 수 없어 공하다.
현실은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꿈과 같고 환영과 같아서 마치 있는 것처럼 나타난다.
이런 것이 기본적 진리다.
그리고 이들 기본진리를 바탕으로,
우선 당장 자신이 집착해 매달리고 있고
그래서 그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던 대상들로부터
집착을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집착을 벗어나고,
자기 자신과 자신이 집착하는 그 모든 것이,
꿈과 같고 환상과 같은 것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되면,
앞과 같은 묶임에서 풀려난 상태에서
다시 그 문제를 모두 원만하게 해결할 방안을 도출해내고
실현할 지혜를 얻게 된다.
예를 들어, 빵은 1개이고 사람은 많다.
누군가 1사람만 살고 나머지는 죽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한계 상황에서 예상되는 내용과 달리,
사는 사람이나 죽는 사람이나,
모두 다 행복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면,
또는 심지어 모두 다 살고 행복해질 방안이 있다면,
앞에서는 실현 불가능했던 한계를 벗어난 것이다.
● 앞에서 길게 말한 1, 2, 3, 4는 우리의 현실이다.
이것을 극복해 벗어나오지 못하면,
좋음과 나쁨이 뒤 섞인 상태에서
나쁨의 독을 시시 때때 맛보면서도
그 한계들로 인해 그것을 체념하고 받아들이며 살 도리 밖에는 없다.
그러나 진리는 그것만 허용하는 것이 아니다.
힘들고, 어렵고,상대적으로 가능성이 희박하더라도,
그것을 벗어날 이치와 원리와 방안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사실5, 6의 방안만 실천해 보려해도
현실적 한계를 쉽게 만나게 된다.
당장 참기 힘든 불쾌와 고통을 참기 힘들다.
좋고 나쁨에서 느끼는 집착을 벗어나기도 힘들다.
지금 자신이 자신으로 보이고,
또 꽃이 꽃으로 보이는 분별 인식을 벗어나기도 힘들다.
삶과 죽음을 초극하여 벗어나기도 힘들다.
그래서 한계에 묶이고 만다.
이렇게 되면 벗어나올 길이 사실 막힌다.
그리고 현실의 대부분의 생명은그렇게 1, 2의 관계에서만 주로 머무른다.
그리고 그 대립으로 인해
그 결과에서 최종적으로 살아 남는 자가 승리하고 강한 자로 보이고
그래서 쉽게 약육강식의 원리만 지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바로 허상에서 허상의 내용을 기준으로 취해 관찰할 때 얻는 피상적 내용이다.
마치 대변 위에서 대장균이 대변을 모두 차지한 것을 놓고
대장균이 대변의 승리자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대장균의 눈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그 허상의 바탕에서 모든 것을 판단하여 그런 결론을 내리는 것 뿐이다.
○ 그러나 현상 실재 실체에 관련한 진리는
그렇지 않음을 말해준다.
현실은 꿈과 환상과 같은 것일 뿐 참된 실재가 아니며,
참된 진리의 내용이 아니다.
그리고 올바른 진리에 바탕을 두고
모든 것을 관찰하고 대하기 시작하면,
앞의 한계가 돌파되기 시작한다.
>>>
● 이미 글이 길기에 끝을 맺는다면,
모두 궁극적으로 오래 오래 좋은 상태에 머물고 남도 이끌려면
앞 1,2 단계에서 집착하여 벗어나지 못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자신과 남 모두 5,6 이상의 단계로 이끌지 못하고
머물지 못하게 하는 한계들을
돌파해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한계를 돌파하는 단계에서
앞과 같은 진리를 깊이 깨달아야 할 필요가 제기된다.
그리고 7 의 단계에 서서
이전과는 다른 선한목적과
그 선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선하고 지혜로운 방편과 수단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외관은 같지만,
그 목적과 의미가 선한 또 다른 8과 9의 방안을 찾아야 하고,
그것을 실천할 필요가 있게 된다.
Ω♠문서정보♠Ω
™[작성자]™ Lab value
◑[작성일]◐ 2011/09/06 05:55
♨[수정내역]♨
▩[ 디스크 ]▩ [DISK:] d:\G\G\04\415b-ide\좋음의충돌문제.htm
ж[ 웹 ]ж [web] http://idealsociety007.tistory.com/179
상실된링크 http://blog.paran.com/society007/45705990
⇔[ 관련문서]⇔
{!-- 관련 문서 링크--}
Ш[ 관련 문서 인용 부분 ]Ш
ㅹ[ 코멘트 등 정리 내역]ㅹ
Mun Tokyun 2011/09/06 11: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숫자는 지극히 추상적이어서 1,2,3,,,은 모든 것을 다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컴은 0. 1로서 모든 것을 구현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1, 2, 3 등의 숫자는 세상의 모든 일을 다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고 또 하나하나 살펴보면 그 1 하나에서 무한한 단계를 다시 나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바둑판에서 바둑을 둔다면, 그 급수가 다르고, 다시 대국자별로 두는 내용이 다르고 그런데 아무리 그렇게 무한에 가까워도 그것은 모두 바둑일 뿐입니다.
바둑을 서로 잘 두고 나서 서로 기분이 좋게 어울려야 하고 또 그것은 다른 1이 됩니다.
2도 같고, 3도 같습니다..국회에서 하는 일은 매번 국가와 사회에 관해 매번 다른 수를 쌓아 올리고 부셔 무너 뜨리기도 하고 바꾸기도 하는 일들인 것처럼 무한하게 변화합니다.
그러니 어느 하나의 단계도 무한히 그 안에서 단계가 다르다 할 것이고, 또 그 단계를 나와서도 또 다른 차원에서 다시 단계가 다르다고 봅니다.
연구원들이 하는 일은 이 무한 속에 들어가 관찰하고 빠져 나오고 하는 일인데, 사실 시작도 안하시는 것처럼 보이는 분도 계시고 각각입니다.
종전에 일단 7까지는 올라야 담당분야 이동이 다시 없을 것이라고 해서, 열심히 연구했는데 약간의 요약을 해주신 것으로 봅니다..쎄세..
이번에 하드 디스크 3개를 추가로 구입하신다는데 그것도 숫자와 관련이 되긴 되지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고 여하튼 구입하시면 자료 정리해 넣는 사이사이 잼 있는 동영상을 부탁드립니당...너무 피곤해용^^
Lab value 2011/09/06 11: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빠비용이 아무리 잼 있어도 한 번 봤으면 되었지 매 명절 때마다 다시 봅니까?
Mun님은 예언까지 하면서 보시면서,,
제 주변에 같은 영화 100번 이상 보시는 분들 정말 옆에서 지켜보면 머리가 돌고 메슷메슥 해집니다...보면서 예언에 훈수까지 둬요,, 훈수대로 못하는 것 알면서,,,^^
요소요소에 탄식,,츳측도 해가시면서..
사운드오브뮤직에 이어서 사운드오브 드라마도 나왔는데,,
볼 것 많은데, 왜 저에게서 동영상을 찾으십니까..
사진 앨범이라니까용,,,
렌즈 값만 믿고 이번에 확인해봤는데 왜 사진이 별로고 심지어 이전보다 못하는지 연구 자료 수집중입니당...Prince evilstupidmiserable Little 2011/09/06 1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제가 이번에 카메라를 테스트해보니
어렵지만 대부분 부품을 정품부터 시작해서 기계 자체에는 문제가 없는 것 같고
문제는 매뉴얼의 복잡성 때문에 있다고 봅니다.
누구나 생각할 문제나 기준이 여럿이 되면 행동할 수가 없게 됩니다..
결국 매뉴얼이랄까 행동 수칙이 간단한 카메라가 찍어 보면 포착해 내고,
매뉴얼이 복잡하고 사용법이 복잡한 카메라는 더듬더듬하다가
찍으려면 없어지고,,
또 이번에 렌즈는 거의 대부분 함께 데리고 갔지만,
그러나 교체해 사용한 렌즈가 있습니까..그럴 여유도 없고 필요성도 못 느끼면서
결국 올카버 형인 렌즈 하나로 모두 소화했는데,
렌즈가 그렇다면, 다른 렌즈들은 무엇때문에 한계를 지워 그 안에서 열심히 만들고 또 구입하여 찍고 그러겠습니까..
결국 얻는 것이 어느 것인가가 있으면 잃는 것도 어느 것인가가 있다..그래서 알고보면 공평해요 ... 이렇게 보면 얻고 저렇게 보면 잃고,, 어떻게 다 좋은 것만 취합니까..
초점 맞추기도 어렵고,,구도 잡아 넣기도 힘들고 그러니
쉽게 되는 것으로 찍은 것과 어렵게 생각하며 찍은 것과 비슷하기도 하고, ~~
결국 가위 바위 보 게임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안에서 답이 나오지 않습니까.
무슨 여기에 수십단계의 전략이 필요하겠습니까..
최종 아르헨티나 전투에서 패배하신 후 계속 무기력한데 좋은 증세라고 보구용,,
인도로나 제대로 가실 준비를 하심이,,,^^
'415b-ide'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가치의 중립화는 가능한가. (0) | 2011.07.24 |
|---|---|
| 최상의 사회의 실현 (0) | 2011.05.03 |
| 국사교육의 대안은? (6) | 2011.04.30 |
| 이상적인 사회의 실현방안에 대하여 (0) | 2011.04.23 |
| 현실의 개선 (1) | 2011.04.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