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 갈등과 대립, 사회 문제의 해결방안
100 인은 한 사람을
얼마나 당황시킬 수 있는가에 관한
실험이 있다.
다음의 동영상도 그와 관련되는 내용이다.
http://www.youtube.com/WGQ3Svu7mGE"
거리를 지나가는데
갑자기 100인이 자신이 있는 곳으로 떼지어 달려들면
누구나 놀라고 당황하게 된다.
심지어 거리를 걸어가다
패싸움을 벌리고 있는 사이에 자신이 끼워지면
또 무척 당황스럽게 된다.
그런데
사회 현상에 대해 논의할 때는
늘 이런 문제에
자연스럽게 부딪히게 된다는 점을
기본적으로 주의해야 한다고 본다.
일찍이 MUN 님은
말이나 글, 그림, 사진, 동영상 등은
때론 자신과 남을 해치는 칼과 같은 흉기가 될 수 있다는
말을 한 것으로 안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고통을 받게 되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그것은 사회문제에서 그 상황이
모두 패싸움을 벌리고 있는 상황이 그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한 쪽을 편들거나
또는 양쪽을 다 편들거나,
또는 어느 한 쪽을 비난하거나,
또는 양쪽을 다 비난하거나,
또는 어느 편도 들지 않고 무관심하거나,
모두 문제 상황에 노출되게 된다.
그래서 사회문제는 본래 그런 성격을 갖는데
그 가운데에서 어떤 말이나 글을 표현하는 경우에는
더욱더 곧바로
그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자신의 편이 1/3 이라면 자신의 반대편이 1/3 이고
또 이도 저도 아닌 쪽이 1/3 이고
대부분 패싸움이 벌어지는 상황은 이런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어떤 방안이 가장 좋은 방안인가에
대한 고민을 깊이 해보아야 한다고 본다.
말과 글이 직접 그 상황에 노출되기에
위험하다고 하지만,
그러나 말과 글이 위험한 것은
사실은 그 말과 글 이전에
그런 말과 글을 표현하게 되는
마음 속 생각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사실은
어떤 주체가 갖는
생각과 말과 글 행위 태도가 다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사회는 실제로 모든 부분에서
수많은 이해관계가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충돌 대립하는 상황에 있다.
그것은 2 인 이상만 모이고
관계되는 부분에서는
늘 발생하는 문제다.
그래서 가족간에서
부부간에서도
부모자식간에서도
형제 자매간에서도
그런 갈등과 대립현상은 발견된다.
여기서부터가 곧바로 사회문제인 것이다.
그 범위를 더 넓혀 나아가도
사실 그 대립의 본질 자체가
위와 같은 문제와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무언가를 놓고 서로 좋은 것을 원하고
그것을 다 함께 차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 경쟁하고,
서로 대립하고 다투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이 대립하고
... 나라와 나라가 대립하고
인종과 인종이 대립하는 경우도
모두 그 사정이
본래 다르지 않은 것이다.
왜 나라와 나라가 싸우는가.
다 그런 이유다.
그리고 평상시에도 모두 대부분
그런 마음으로
기본적으로 생활해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은
사회는 마치 각기 패를 나누어
각기 여기저기에서 보이던 보이지 않던
서로 패싸움을 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싸움이 싫어서
어떤 이가 자신만 이 싸움의 현장에서
빠져 나와
홀로 평안하게 보내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러나 그것은 결코 쉽지 않다.
앞에서 자신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다 무시한다고 해도
여기에서 자유롭고 평안하게 되는 것이
아닌 것이 그런 이유다.
마치 나라 안에 전쟁이 났는데
자신만 혼자
산사에 들어가 도를 닦으려고 해도
그것이 잘 이룰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 자신은 아무런 시비를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거리를 걸어가고 싶다 해도
상황이 그렇지 못하다면
자신이 여기에서 자유롭게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내용이 맨 앞에서 본 동영상의 실험 내용
즉 100 인이 한 사람을 당황시키고 놀라게 하는
그 상황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자신은 세계의 모든 이의 평화를 바라고
또 다른 이와 분쟁을 일으키고 싶지도 않더라도
막상
자신이 사는 나라가 다른 나라와 전쟁을 벌인다면,
그 안에 살아가는 자신은 싫든 좋든
또 그 전쟁의 참화 속의
한 주인공이 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위 동영상에서 나오는 상황처럼
갑자기 자신의 상황이
심하게 바뀌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가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결국 사회 문제에 있어서는
사회의 수많은 문제를 외면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싸움을 벌이는 여러 당사자들 가운데
어느 한편에 들어 열심히 싸움을 벌이는 것도
물론 안 된다.
간단히 말해
A 와 B 가 서로 나뉘어 싸운다고 할 때
자신이 이에 대해 전혀 무관심하고
외면한다고 하여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또 그렇다고 A나 B 둘 가운데 어느 하나를
편들어 같이 싸우거나
또는 자신이 한편을 도와 그 한편이 이기게 해도,
이 문제의 해결방안이 아니다.
또 모두를 비난하거나
또 모두를 다 편들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면 무엇이 좋은 방안인가.
매우 어려운 것이 그 방안이다.
그런데 이는 2 인 이상의 문제 부터
전 인류 대 다른 생명 간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 문제에서 공통적으로 만나게 되는
어려움이다.
자신이 패싸움을 벌이는 거리에서
이 사이에 끼어 있다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가.
위 동영상은 그런 상황에서 각 주인공들이
바삐 도망치고 넘어지는 모습을
우스개 화면으로 보여주지만,
그러나 이것이 현실이라고 본다면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이 상황의 문제를
쉽게 해결하고
웃음으로 마무리 지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 사실은
도망가는 것도 좋은 방안이 아니고,
그렇다고 이 상황을 무시하고 외면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어느 한편을 일방적으로 편들 수도 없고
또 양쪽을 모두 편들 거나
양쪽과 모두 대립할 수도 없음을
반복해 말하게 되는데,
그것은 일단 위에 나열한 방안들은 좋은 방안이 아니므로
위 방안들을 제외하고
대신 관계된 모두가 다 좋은 상태가 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이 될 것인가
그 해답을 찾아 내는 것이 필요함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위 상황에서 각 주인공이
얻어내야 할 방안도 그것이라면 그것이다.
그러나 각 구체적인 경우에 그것이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문제에 대한 글을
올릴 때는
우선 고민의 정도가 깊어지게 된다.
///
물론 그 원칙적인 해결 방안은
일찍이 lab 님이 제시한 방안에
그 방안의 비밀이 들어 있다고 본다.
우선
A와 B가 모두 어떤 것을 원할 때
그리고 서로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이해관계가 대립되어 다툴때
그것을 물리적으로
무제한으로 생산해내
원하는 이가 그것을 모두
다 원하게 차지하게 만들 도리는 없다.
그러나 어떤 것을 차지하고
차지하지 못한 이가 나뉜다면,
차지한 이는 차지해서 좋음을 얻으므로
그렇게 좋음을 얻은 상태로 그대로 두고
차지하지 못한 이는
차지하지 못해서 나쁨을 느낄 것이지만,
그 상황의 의미와 해석을 바꾸어
그 마음내용을 변경시켜
주어진 상황에서 좋음을 얻게 만들면
그 상황에서 모두가 좋음을 얻게 된다.
그리고 각자가 모두 집착을 버리고
그 각각이 갖는 뜻과 희망의 내용을
온 생명을 위한 선한 뜻으로 변경시키면
문제가 원천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
즉 모두가
작은 범위로 나의 범위를 두어
그 작은 범위의 나와
그 범위 밖의 남을 세워서
그 둘간의 대립관계를 만들어 내지 않고
온 생명을 위해
온 생명에게 가장 좋은 상태를 만들고
이를 모든 생명에게 공평하게 차별없이 나누어 준다는
마음 자세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상태가 되지 못한 이들은
사실은 그 누구나 다 희생자이고
진정한 가치를 차지하지 못하는
기계와 같은 존재가
된다는 입장인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입장에서
가치의 문제와
가치 회계 방안에 대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한편 mun님은 이외에도
현실에서 이해가 대립되고
제한된 이만 어떤 것을 차지할 수 있는 경우에서는
그 각각의 내용을 가장 적절한 이가
차지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는 것을
주된 방안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이 두 내용을 결합시키면
비교적 이상적인 해결방안이 도출될 수 있다고 본다.
즉 그런 문제는 기본적으로
각 당사자들이 자연스럽게
경쟁이나 대립관계에 놓이게 되지만,
위와 같은 경쟁 원리에 의하여
서로 경쟁에 임하고
또 한편으로 그 각 당사자들이
모두 집착을 버리고
온 생명을 위한다는 자세로 임할 때는
또 모든 문제가 원천적으로 해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관계에서 누가 차지하거나, 차지하지 못하거나,
또 그것이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이런 것을 놓고 시비를 일으키지 않고
서로 집착없는 가운데
모든 생명을 다 함께 위하여 노력한다는 자세로
임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그것이 모든 사회 문제에 있어서
원천적인 해결방안이 된다고 본다.
실제로 사회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 때는
각기 서로 집착을 버리고
그런 가운데
무엇인가를 차지하는 이는
차지해서 좋고
차지하지 못한 이는
차지하지 못해서
각기 좋은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되는 방안은
다 같이 위와 같은
상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서로 집착을 갖고 서로 대립하고
서로 마음 안에서
또 말과 글에서 또는 행위로
서로 패싸움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런 요구마저도 그 당사자들을 모두
거슬르게 하는 요구가 되기 쉽다.
대립관계에서 경쟁과 대립에 집착하는 경우에는
자신 외에 모든 이가 다 좋게 되는 방안 마저도
그것을 싫어하는 마음 상태가 된다.
즉, 자신과 대립하는 다른 상대방이 좋게 되는 것은
비록 그로 인해 자신도 역시 좋더라도
자신의 상대방이 좋다는 그 이유만으로
그것을 나쁨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강한 집착과 고집을 갖고 임하는 경우는
사회문제의 해결이 대단히 어렵게 된다.
그것은 그런 경우
다른 이의 나쁨이 반드시 전제가 되어야만
그의 좋음이 비로소 얻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를 다 함께 좋게 만든다는 것 또한
그와 대립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결국 이처럼 고집과 집착을 갖고 임하는 이는
위 구조에서 스스로 병을 해결하지 못하고
그 인과관계에 따른 고통을
일일히 하나하나 받아야 하는 상황에
그대로 노출되게 된다.
그것은 그가 고집하고 대립하여
임하는 그런 자세 때문에
기본적으로 발생하는 문제가 된다.
그러나 사회에서는 이런 고집과 집착을 가지고
서로 임하는 것이 대부분의 현실 상황이기 때문에
이런 사회문제의 해결이
매우 어려운 것이다.
현실의 어떤 문제를 놓고 보더라도
이런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대립를 하던
또는 그 외 어떤 상황이던
상황의 본질은 같다.
제한된 물질 환경에서
모든 이를 만족시키는 물리적 해결방안을
찾아내는 것도 곤란하고
또 이해관계인 대립하는 당사자를
모두 심리적으로 만족시키려 해도
또 그것이 잘 안 되고,
심지어
상대방을 좋게 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던 곧 자신에게
나쁨을 주는 일로 생각하고
무조건 안된다고 집착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의 해결이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내용이
현실에서 외관으로 그 모습이 보이던 보이지 않던,
사회 속의 대다수의 마음 안에서
그런 형태로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즉 거리에서 정말 패싸움을 벌이지는 않더라도
사실은 언제나
각 사람의 마음 속에서
그렇게 패싸움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또 현재만 특별히 그런 것이 아니고
생명이 존재하고 다수가 서로 얽히어 관계하는
상황에서는
대부분이 그런 상황이다.
그래서 이 본질적인 문제는
까마득한 수억년전의 생명들도 문제가 마찬가지고
그것은 또 앞으로 수억년 후에도
상황이 비슷하다.
해결이 되는 상황이란,
오직 각 당사자가
앞과 같이 집착을 버리고
온 생명을 위해 집착없이 노력한다는
마음 자세를 갖는 경우에만
바로 그런 경우, 그런 주체들의 범위에서만
그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경우는 대단히 드물다.
오늘도 직장에서는
직장 상사의 부당한 행위에
괴롭힘을 당하는 부하 직원이 있을 수 있고
가정에서는 가정대로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고
또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끼리는
서로 불화하고
서로 대립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갖고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각 사람의 마음의 내용에 들어가보면,
부모와의 관계에서는
부모에 대해서 미움을 갖고 있고
자식과의 관계에서는
또 자식에 대해서 미움과 서운함을 갖고 있고
부부와 관계에서는
또 상대배우자에 대해서 또 미움과 서운함을 갖고 있고,
,,,,,
이런 식으로 문제되는 상대가 누구이던
즉, 그것이 민족이던 인종이던 국가던간에
그것이 자신의 편이 아니고 상대방이면
모두 그런 상대방에 대한
미움과 분노의 마음으로 상대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친척을 생각하거나 만나면
그 친척에 대해
서운하고 미운 마음을 갖게 되고
또 옆나라 민족을 생각하거나 하면,
또 그 옆나라는 옆나라대로 또 밉고
....
이것이 그런 형태대로
끝이 없이 이어진다.
그리고 대부분의 생명이
긴긴 시간 동안 그런 형태로
임해나간다.
단지 구체적인 상대와 내용만 바뀔 뿐,
그 문제의 본질 자체가
달라지지 않는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사회문제의 해결이란
본래 쉬운 것이 아니다.
그래도 해결방안을 생각해본다면
결국 앞에 나열한 내용처럼
모두를 다 만족시키는
어떤 물리적 조건을 만들어 내거나,
그렇지 못하다면
가능한 가장 적절한 이가
제한된 어떤 상태를 차지하도록
그 방안을 만들어 내고
그런 가운데 차지하지 못한 이는
차지하지 못한 대로
또 좋음을 얻을 수 있도록 만들어 내야하고
다시 궁극적으로는
이 모든 이들이 집착을 버리고
그리고 집착없이
온 생명을 위한다는 마음을 갖고
추구하는 상태로 바뀌어야만
문제가 원천적으로 해결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각 개인마다
그렇게 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이 사회 문제를 주제로 삼아
이 곳에 조각글을 올리는 것은
그런 방향에서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글이 아니면
그것이 어떤 내용이던,
결국 자신과 남을 해치는 심한 흉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prajna 님이 lab 님과 mun 님에게
법화경의 안락행품을 선사한 것은
또 그런 깊은 의미가 들어 있다고 본다.
본래 사회문제를 담당해 연구하는
lab 님과 mun 님은
사실은 그런 패싸움 현장에서
그 사이에 끼어 임하는 그런 상황에
노출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단지 lab 님과 mun 님만의 상황은 아닌데,
그러나 그 상황의 문제점을
잘 보지 못하면
글을 쓰면 쓸수록
그것이 모두 자신을 스스로 해치는
흉기가 되어 돌아오게 된다.
물론 앞에서 반복한 것처럼,
그렇다고 그저 모든 사회 문제에 대해
외면하고 무시한다고
상황이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또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결국 어떤 문제를 연구하던,
그 연구를 통해
모든 관계인들이
다 최상의 상태
즉 집착없이 온 생명의 최상을 추구하는 상태로
변화할 계기를
그 연구내용이 제공해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것은 당장은 자신이 아닌
다른 상대를 찌르는 칼이 될 것이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장차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칼을
만들어 내는 원인도 되는 것이다.
이런 사정으로 오직 남만 베고
자신은 전혀 베지 않게 하는 칼을 만들어 내는 것은
본래 곤란하다.
이런 문제를 피하기 위해
모든 것을 외면하고
그 모든 문제에서 달아나려 하기 쉽지만,
그것은 결코 좋은 방안이 아니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그 모두가 다 함께
싸움의 현장으로부터
구제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그 방안들을 실천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op] FR http://idealsociety007.tistory.com/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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