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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릴때 국사공부를 하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끝없이 침략 당하고,
수많은 굴욕의 현장에 서있었을 우리 조상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그래서 그 때 마다 자주꿈꿔 보곤 했다.

세계를 정복하는 위대한 왕이 되어보는 꿈을,

사실 그 방법도 많이 알아냈다.

그것은 별거 아니다.

세계 각국보다 단 1년 정도만 기술이 전 분야에서 앞서게 만들면,

하루 아침에,
세계를 정복하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는 것을,

각종 공격 방어의 전술 전략과,
정복후 통치방법,


사실, 약육강식 (강식약육이 맞을 듯 한데)의 법칙이 지배하는 현실에서

불이라는 도구를 이용할 수 있었던 인류는
다른 동물들을 경쟁 대상에서 멀리 띄어 놓게 되었다.


전쟁 결국 간단히 말해 싸움의 기술과 도구의 차이는

그 기술이 아주 조금 차이가 나더라도
그 차이가 갖는 결과의 차이는 크다.


생각해보면,
임진왜란 때 1발씩 장전하여 발사가 가능한 유치한 딱총이란 신무기때문에,

우리의 국토는 철저히 유린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외는 칼과 화살의 싸움이고
성을 공격해야 하고 방어해야 하는 싸움이니,

멀리서 온 원정군을 상대로
성을 의지해 방어하는 전쟁을 치뤄야 하는 우리 군대가

그 다지 큰 실력 차이를 나타낼 것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다만 활을 능가하는 조총이라는 신식무기에 의해

거의 파죽지세로 유린당하고,
왕마저도 이리저리 피난을 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다만, 해전에서는 반대로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이라는신무기를 바탕으로

왜군을 철저히 유린했는데

이 역시 이순신 장군이
새로운 무기와 전술로 군대를 통솔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었던 일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X5h02ZmeB5c


그러나 결과적으로 7년간 육지에서는
국토가 철저히 유린당했고

당시 참상은 피난가던 부모가
배가 고파 아이를 잡아 먹었다고 기술되어 있는 정도이니,

그 끔직한 고통은 지옥의 모습과 가까웠을 것 같다.



첩보상
전쟁 가능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되어 있었던 터라,

이순신 장군은 홀로 미리 대비책을 강구하기도 하고

이율곡 선생님은 십만 양병설을 주장했지만

군대는 외국에 대해서는 방어책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역모 쿠테타 반란군이 될 수도 있다는 걱정을 했는지

당시 왕인 선조는 이를 허락하지 않아 그 뜻을 관철하지 못하고,


결국 이율곡 선생의 부인은 전쟁 중
왜병에 능욕당하여 자결하는 수모를 겪는다.


우리의 가까운 근현대사를 살펴보더라도,
그런 수치와 고통의 현실은

수없이 찾아볼 수 있다.


그럼에도 외교상 빈번하는 모욕적인 언사를 대할 때마다,

피가 거꾸로 솓구치는
느낌을 받지 않는 순간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힘이 약해 당해야 하는 고통을 기술하자면 끝이 없다.

시야를 넓혀 세계의 역사를 살펴봐도 이치는 같다.



전쟁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일본군이거나 몽고족이거나 여진족이거나 
사실은 대부분 일상생활에서
목축이나 농사를 지으며 사는 선량한 겁쟁이들이다.

그 마음은 대부분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며
평소에는 살인은 꿈도 꾸지 못할

착한 심성을 가진 선량한사람들이 대부분이며

아마 바퀴벌레나 말벌 하나만 머리에 붙어도
기겁을 하며 도망을 칠
겁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매일 전쟁 전술 전략과 통솔방법 만을 연구하는
위대한 장군을 만나게 되면,

며칠 몇달만의 훈련을 통해서도
이들은 결국
세계를 유린하며 살상과 강간 약탈을 일삼고 다니는

훌륭한 떼강도단으로 언제든지 돌변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고대의 어떤 민족은

단지 군사들의 방패를 이어붙여
오늘날 탱크와 같은 형태로 군사를 배치하여 전술을 펼치는 전술만으로도 

당시에 비슷한 무기를 갖춘 이웃나라를 모두 정복해나기도 한다.


또, 단지 전군 기마화와
뛰어난 공성전략과 공성 도구 몇몇 만으로

북반구 육지에 있었던 국가 거의 대부분을 붕괴시키고
광대한 영토를 차지한 민족도 있다.


그 집단의 수가 겨우 몇백만에 불과했음에도,
당시 세계 거의 대부분을 정복하여

몇백년을 통치해나갔던 것이다.


극소수가 대다수국가를 모두 정복해 효과적으로 통치했던
약간은 비상식적인 통치가 가능했던 것은


그들은 일단 정복한 국가에 단지 소수의 감시자만 남겨두고 떠나가는데,

본국 군대가 떠나갔다고

한 번 전쟁에 진 이들이
이 소수의 감시자를 함부로 대하면,


결국 역마체계로 통신체계를 이루고 있던
본국으로부터 사정을 감지당하고

곧바로 다시 대부대에 의한 공격을 받게 되어

반란을 기도한 종족 전체가
아이들까지 몰살당하는 지상 최대의 참극을

몸소 겪게 된다.


오늘날 전쟁 참화를 겪고 있는 이라크와 같은 나라의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과거에 그 민족으로부터 그런 슬픈 참화를 겪었던 과거 사실들을 

모두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지금으로 보면
매우 유치하게 느껴지는 통신체계와 전쟁전술을 가졌던

그 소수집단은

오늘날의 통신, 교통체계로도
사실상 모두 통치하기에는 힘이 버거울 듯한 

광대한 영역을 모두 차지해
그 당시 세상에서 
그 모두를 효과적으로 통치했던 것이다.



이는 비유하면

마치 오늘날 거대한 조폭집단이

어떤 유흥 영업소를 차지한 다음,

빼빼마른 약골 체형의 사나이 하나 씩만 남겨두고
떠나 가면서 넓은 영역을 관리해도,

이후 각 영업소의 주인들 모두가
이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모습같다고나 할까,

그리고 

이런 모습을 우리의 근현대사에서도 찾아보게 되는데

한 서양인은 일본에 식민지지배를 받던 조선을 기행하면서

체구도 훨씬 큰 조선인이
조그만한 일본인한데 길거리에서 심하게 채찍질을 당하면서도

한번도 대항하지 못하고 맞고만 있고

같은 조선인들은 단지 수수방관 이 모습을 지켜 보기만 하는

모습을 본 다음

이를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라고 글을 적고 있다.



아마 그 당시 우리의 조상들은,
그 상황이 
무척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웠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현명했기에
참고 그 상황을 지켜 보고 있었다고해야 하지 않을까. 


사실 당시 일본군들은
당시세계 강국이었던 미국과 '맞붙어' 혈투를 벌일 수 있었던

나름대로 강력한 실력을 갖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오늘날 우리들 역시
상식으로 그런 상황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하여도,

그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생각해보면

오늘날 아주 작은 인간이
거대한 코끼리도 쉽게 조련하고,

수많은 소떼 들도 모두 효과적으로 사육하며
하나씩 붙잡아 도축해 나가는 모습과도 같다고 할 것이다.


아마 사육당하며 고통을 당하다가
도축을 당해야 할 순간에 처한 입장의 소도,

저 정도 인간 한 명쯤은
한 번 내달아 머리로 받으면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은 할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이나 인간도 서로 그렇게 어리석지는 않다.

그래서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모습들은 

역사 현실속에서는 아주 태연하게

대낮에 당당하게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아마 당시의 우리 조상들도,

자신의 사랑스런 딸을
적군의 노리개로 강제로 보내야하고


자신이나 자신의 아들들이
적군의 군사 시설이나 방어시설을 건설해야 부역에

끌려다녀야 하는 고통을 겪으면서,


아마 자신이 자신의 가축에게나 행해 마땅했을 일을

거꾸로 자신이 현실에서 몸소당해야만 하는 현실을

몹시 억울하고 원통하겨 여겨

밤새 슬픔과 비통함의 눈물로 밤을 보내야만 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모든 생명을 그대로 놔두면
모두 제 뜻대로 움직이고자 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보다
강한 누군가에 의해 제압당하고 속박당한다.


그리고 그렇게 힘이 약해 고통을 당하는 쪽에서는

그 속박을 벗어나
다시 자유롭게 자신의 뜻을 펼치기를 희망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누군가 그런 입장에 처하게 되면,

자신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힘이며 지혜라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연마해나가게 된다. 

사실 힘과 용맹함과 가지고는
승부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예를 우리는 수많은 맹수들에서 찾아보는데,

그들은 결코 냐약해 보이는 인간을 이기지 못한다. 

이런 경우를 이미 앞의 가축들의 예에서 살폈지만,

그런데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이런
동물과 같은 전략을 구사하는 이들을 많이 만난다. 

개인적으로 이런 유형을
동물이 하듯, 1 단기어만 가지고

무조건 원하는 방향으로
직진해 나가는 형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마치 스페인 투우소장에서
흰 김을 내뿜으며 내달리는 거친 황소와 같다. 

투우사는 그를 유인하고는 곧 피하고,

또 유인하고는 곧 피하면서
수없이 농락하다가, 


관중들이 환호할 시점에서

더욱 성이 나 내달리는 상대의 등에

최종적으로 칼을 뽑아 꼽아 쓰러뜨리고 나서는

관중들로부터 우뢰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는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혹시 자신이

평소 탐이 나는 것이 있거나,

화가 나는 것이 있을 때마다,

곧바로 감정대로 마음과 몸을 곧바로
그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면,

그 방식을 앞으로 철저히 버리지 않는 한,

결국에는

같은 방식으로 살고자 했던 많은 동료들을

축사와 같은 장소에서
다함께 같이 만나게 되게 된다고 본다.


그 축사같은 곳에서는,

상대가 채찍을 들고 교육을 시키는데,

대부분 두려워하고 따르지만,

가끔 그 곳에서마저도
여전히 1단 기어만 넣고 달리고자 하는 사람도 있다.


이를 아직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마와 같은 상태라고 할 것이나,

결국, 잦은 채찍질의 고통을 당한 끝에

이제는 그 채찍의 그림자만 눈에 보여도

곧바로 상대의 뜻을 따라 재빨리 몸을 움직이게 되고


또 앞으로 그래야만 계속 사랑과 신뢰를 받고
편하게 지낼 수 있다는 정도의 지혜를 갖게 될 때쯤

비로소 실제로 신뢰를 받아

안장과 고삐를 몸에 채운 채
작은 자유를 
다시 회복하게 된다. 


세상은 이들을
감정을 참지 못하고 범죄를 저지른 이라고 
낙인찍고 배척하기 쉽지만,


사실 같은 사람으로서

간혹 이들을 개인적으로 만나게 되면,

그 성격의 순수함과 감정의 풍부함에 놀라게 되고

그리고 그가 행동에 나서게 된,

그 억울하고 심히 궁박하였던 사정까지 듣게 되면,

그가 오히려 진정한 사나이며

다른 사람들은 모두 겁쟁이며 비겁자라는 생각까지도 갖게 된다.


비록 범죄인을 미화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더라도

많은 사람이
감성과 본능과 주로 의존하여 행해 나가는 
조폭 영화나 범죄, 폭력 영화를 보며,

멋진 모습이라 생각하고
이들의 삶을 동경하게 되는것도

그런 마음에서 쉽게 공감하여 이해할 수는 있다.



순박하고 심성이 착한 것은

우직한 소에 비할 바가 아니고,

비록 그들이 일시적으로

약간의 탐욕과 화에 잠시 이성을 잃었다 하여도

그것은 사실, 

인류를 포함하여 모든 생명이 다 함께 갖고 있는 것 아닌가? 


다만 다른 사람들은

비록 희망하는 바는 같을 지언정

조금 몸을 사려,
참아야한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에


이들은 과감히 1 단기어를 꺽고

상대를 향해 
돌진했던 차이 밖에는 없는 것이다.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95bFzlXLozM$



사실 생각해보면 그들을 잡고 가둬들이는

다른 사람도

예수나 부처처럼, 오직 깨끗하고 맑기만 하고

지혜롭고 선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그 가운데 누군가는 가둠을 당하고,

누군가는 가두는 역할을 하는 것은,


단지 이들 서로간에

상대적으로 지혜와 참음의 덕목이  
조금 부족해서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들이 비록 다른 사람을 가두는 역할을 맡지만,

그들 역시 예수나 부처와 같은
지고지선한 상태가 아니라면,


사실은 그들 역시도 크게 보아

죄인의 무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야 한다.



그래서 사실 우리현실에서는

갇혀 지내는 이보다,

사실은 그 지은 죄의 규모가 훨씬 크고

사회에 끼친 피해가 훨씬 큼에도

오히려 호화로운 곳에서 유흥을 즐기며 희희낙락하며

당당하게 활개치며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많이 있음을 본다.


이처럼 크게 보아 다 죄인인 입장에서

누구는 갇히우고 누구는 가두는 현실의 차이는


사실 상대적으로 누가 조금 더 교활하고

누가 좀 더 우직하였는가의 차이밖에는 다름 아니라고

쉽게 비웃을 수 있게 된다. 


사실 선한 뜻을 조금이나마 더 우직하게 지키는 이들만이

비교적 자유롭게

현실에서 거리를 활보해 다닐 자격이 주어진다.



그러나

지혜만 많으면,

그들은 이 승부의 세계에서

영원히 강자로 살아남게 되는가?


그렇지 않다. 

사실, 지혜가 많은 민족으로는 세계에서
두째 가라면 서럽게 여길

민족이 있다.


오늘날 최종적으로
누가 가장 뛰어난 지혜를 갖는가를 겨루는 시합이 
있다면,

아마 그것은 노벨상 타기 게임이라고 할 것이다.

그 노벨상을 거의 3분지 1, 2 이상을

아주 작은 소수 민족이

차지한다는 것은

그들이 상대적으로 다른 민족에 비해

뛰어나도 엄청 뛰어난 지능을 갖춘

민족임을 쉽게 인정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가까운 역사를 살펴보면,

그런 민족이, 수천년간 나라가 없이 방랑하였으며,

그 동안 수없이 많은 장소에서

수없이 집단 박해를 당해왔고

아주 최근에는 정말 축생과 같은 상태로

단체로 한 장소에 끌려가,
옷을 벗기우고

대규모 집단학살을 당한 사실을 살펴볼 수 있다.


아마 같은 인류가 같은 인류에게

그런 일을 할 수 있고

또 당할 수 있는가하고

건전한 상식을 갖는 이는 누구나 생각하겠지만,


사실 수십 수백만명이

다른 집단에 증오나 멸시 차별 박해 탐욕의 대상이 되어

그런 피해를 당하는 예들은

역사서를 살펴보면 수도 없이 나열된다.


그런 한 예로

가족들과 함께 살던 아프리카에서 잡혀

아메리카 대륙까지끌려가 혹사당해야 했던

수백 수천만 흑인들의 후예들은

오늘도 아마 그런 조상들의 상처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고 있을 지 모른다.


다만 최근 역사사실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비교적 선명한 화질의 흑백필름으로

그 민족의 참상을 생생하게 보여줘서

우리의 뇌리에 각인되는 효과가

좀더 선명하게 느껴질 따름이라고 본다.


또 생각해보면 그런 피해는
먼 곳의 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가까운 현실모습도 이와 같다.


그래서 억울하게 짐승처럼 학대를 당하고
살해당해야 했던 
예에 넣는다면,

우리 조상들의 역사현실도
크게 뒤쳐지지 않는 과거역사다.


그래서 각국 각 민족의 신화들을
모두 곧이 곧대로 믿는 바탕에서 생각해보면,

스스로 하느님의 적자를 자처하거나,
서자를 자처한 민족이나 국가가,

모두 현실에서는 이웃민족들로부터 
짐승처럼 굴욕과 수모를 당한 것이

서로 엇비슷하다.


이런 사실은

비록 지혜가 뛰어나다 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의미해주기도 한다.



아마 세계정복과 통일조국이라는 제목만 보고

이 이상한 글을 보기 시작한 이는,

짜증나는 과거 역사와 함께

이 긴 글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적고자
이런 제목을 붙였고

이렇게 끝도 없이 글을 적는가 의아하게 여기고

도데체 결론이 뭔가를 물을지도 모르겠다.


혹시나 이런 분이 있을까 하여,

그 결론만 간단히 먼저 말하면,

결국 지혜와 힘을 같이 갖춰야 하고,

또 최종적으로 그 지혜와 힘을 발휘할 뜻을

가장 선하게 가진 상태에서
그 지혜와 힘을

사용해야 한다는 뻔한 결론이 결론이다.



어떤 이는 지혜와 힘을 다 갖췄으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굳이 그 뜻까지 선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고

역사현실에 비추어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지혜와 힘을 둘 다 갖춘 집단이

하나만 있으라는 법은 없다.


결국 이 둘이 의견이 달라 전쟁을 벌일 때는,


결국 이 가운데 누구의 뜻이 더 선한가에 따라,

그 장기적 승패가 결정된다.

뜻이 보다 선하다는 말 자체에

그 이유가 자체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뜻이 상대보다 더 선하다는 것은

다른 생명들이 볼 때

결국 그런 집단의 뜻이

다른 집단의 뜻보다는

보다 덜 피해를 주고
보다 더 많은 이익을 주는 뜻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 이외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은

비록 하나 하나 살펴보면
전쟁의 승패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이들이,

결국 보다 선한 쪽에

저항을 더 줄이게 되고
더 협조를 하게 만들고,


그 결과 힘의 우위를 서로 다투는 전쟁에서

한 쪽의 승리를 가져다 주게 만들어 준다.


또 이 문제를

단지 상대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위해서

그 뜻이 선해야 마땅하다고
이해하고 그칠 것은 아니다.


실질적으로

힘과 지혜를 갖추면,

개인적으로는 각기 스스로 자신의 상태를

자신의 힘과 지혜를 사용하여

스스로 만족스런 상태로 쉽게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상태에서 만족하여

자신의 개인적 행복에 조용히 머물러
충분히 지낼 수 있음을 암에도

굳이 그 힘과 지혜를
사회를 대상으로 발휘하려 할 때는

그 뜻이 반드시
사회 전체에 선과 행복을 가져다 줄 
선한 뜻일 경우에만

굳이 그렇게 해야 할 필요성도 있고

당위성도 있다는 사실을 느낄 때일 것이다. 


또한 그와 같은 지혜와 힘을 갖춘 집단이

그렇지 못한 상대와 전쟁을 벌인다면,

상대적으로 보다 우수한 지혜와 힘을 갖춘
'그' 선한 집단이

결과적으로 승리를 거두게 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또 이 사실을 반대로 역으로 해석하면,

그와 같은 내용을 그렇게 스스로 아는 집단만이

정말 상대보다 깊은 지혜와 힘을 갖춘 것이기 때문에

또한 그런 승리의 결과를

최종적으로 얻게 되는 것이라고
반대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래서 무장한 군대가 거리를 지나감에

모두 문을 닫고 숨기에 바빠한다면,

그 군대는 아무리 최신 무기를 갖추고
강한 훈련을 
받은 정예군대라 하여도
힘이 강한 군대가 아니다.



반대로 거리를 지나감에

모두 문을 열고 나와

행군하는 군인의 어깨와 허리를 감싸안아

행진을 방해받는 군대만이 진정 강한 군대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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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결국 지혜와 힘 그리고 선한 뜻이 모두

다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세계를 정복하고

우리 국가가 처한 현실에서 지상과제가 되어 있는,
조국통일을 달성할 구체적인 방안을 
도출하려는 데에 있어서는

이런 막연하고 추상적인 결론은
사실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대체 무엇이
그 지혜와 힘과선한 뜻의 구체적인 내용인가?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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