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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b-bas

6의 한계돌파방안 -iv

작성자: Mun Tokyun

세상을 보면
부부가 싸우다 남편이 아내를 죽이고 또는 아내가 남편을 죽이기도 하고
형제가 싸워 형이 아우를 아우가 형을 죽이는 경우도 있고
자식이 부모를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경우도
삼촌이 조카를 조카가 삼촌을 죽이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각기 그 원인이 상대방에게 있다고 보고 상대를 극히 증오하여
서로 이후의 단계의 싸움을 계속해나가게 되지만,
사실은 자신의 마음의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스스로 올바로
이끌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미 LAB님이 모든 사건의 최초 근본원인- 범인으로 각자의 마음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그 마음의 범인을 체포하기 위해 이상한 논의를 계속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
그러나 또 한편 그상태에서 서로 싸우고 죽이는 이들은
사실 또 한편으로는 상대의 잘못에 형벌을 가하려 나타나는 지옥의 옥리와 같다고 말하는데
이 역시 또 한편 맞는 말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러면서 이들이 서로에게 서로서로형을 가하게 방치하는 한편
더 극심하게 나아가는 것이 오히려 서로가 한층 더 깨끗해지는 방편이라는 취지로
글을 남기고 사라지려 하면 이는 문제라고 본다..

사실 그렇게 하면서도 자유롭게 편안하게 될 수 있는 사람은
지옥도극락이다 이런 소신을 갖고 살아가는 이 외에는 별로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닫힌폐쇄회로에서 벗어나올 길을 제시하지 않는 방안은 그래서
또 하나의 독이라고 보게 된다.

모든 각 개인의 문제나 사회문제의 가장 최초의 원인은
각 개인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극히 집착하여 마음을 기울이는 자세에서 비롯한다.

재벌이 수조원대의 재산에 집착한다면,
노숙자도 자신의 신체와 얼마 안되는 옷에 집착하는데
집착의 액수나 대상이 다르다고 그 문제가 있고 없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앞에서 1,2 에 머무는 상태의 독을 제거할 방안으로
그 반대로 행해 벗어나오는 5,6,7 의 방안을 이야기했지만,
이 역시 실제로 행하는 것은 어렵다.
그것은 본능적이고 감성적으로 이끌리는 당장의 자신의 좋음을 끊고
반대로 행하라는 요구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실제로 행하면 억지로 참고 의무감으로 하게 되는 모습은
그 내용이 모두그렇기 때문이다.

성인의 말씀이란 결국 여기에 압축된다.
탐욕을 쫒지 말라,
너의 이웃에게 욕을 하지 말라.
자신의 대들보를 놔두고 남의 눈의 티끌을 비난하지 마라..
원수를 사랑하라...
등등의 내용은 결국 같은 원리를 말한다.

많은 종교인이 있지만 그러나 구체적 사안에서 이렇게 행하는 이가 몇이나 되는가..
그러나 그래도 한다면 그것이 바로 5,6,7의 방안에 머무름을 말한다.

여기서 무엇인 문제인가..
하기 싫은데, 그래도 억지로 참고,,한다의 이 부분이다.
왜냐하면 그 스스로 그것이 왜 자신에게 좋음인지
왜 좋은 일인지가 납득이 안가고 이해가 안되기 때문이다.

사실 예수님이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원수를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으로 원수가 악을 자신에게 행하고도 보복을 받지 않는 이익을 거둔다고
그는 생각할 지 모르지만,
사실 이는 그 부수적 효과이지,
그 본질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이다.
자기자신이 원수와 함께 지옥에 가지 않고
천상에 올라갈 수 있게 하는 길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성인의 말을 따라 억지로라도 따라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 가운데 천상에 올라간 다음
그 이후에 왜 그렇게 해야 했는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당장 이해가 되지 않는데 어떻게 하는가..
그것은 사실 왜 불을 켜야 하는데
전등을 향해 라이터나 횃불을켜지 않고
벽에 있는 스위치를 위로 올리거나 아래로 내려야하는가 하고
의문을 갖는 것과 같다..

전기기사가 회로도와 전기의 원리를 설명하고 나서야
전기스위치를 켜 전기불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면
모든 일이 더디고 힘들기 마련이다.
사실은 우리가 대부분 쉽게 사용하듯
그 원리를 그대로 믿고 즐겁게 행하면 사실
5, 6, 7에서의 문제는 해결된다.
즐겁게 행하지 못하고 불만을 참고 억누르고 마지못해 의무로 행하기에
우선 개인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는데

일단 무조건 그것을 믿고 즐겁게 행한다,,
즐거운 것을 당장 추구하지도 않고 따라서 얻지 못하는데--- 그 상태에서 그대로 즐겁게 머무른다.
화가 나는데 상대나 대상을 파괴하지 않고 따라서 통쾌하거나 시원하지도 않는데
-- 그 상태에서 그대로 즐겁게 머무르면서 그것을 행한다..

그것이 반대로 말하면 제 1차적으로 5,6,7에서 개인적인 측면에서
발견되는 한 문제점을 제거하는 쉬운 방안이기도 하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안 된다면
좀 더 복잡하게 그 이유를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당장 1,2 등의 앞과정을 볼 때 좋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의 하나지만,
그러나 그렇게 안되고 대부분이 그에 매달려 얽매이고 묶이어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닌가..


///TO BE CONTINUED ///

그래서 앞의 1, 2 입장에 있는 이들은
자신과 같이 하지 않는 이는 모두가 다 적이 되게 된다.

이 상태에서는 자신을 포함해 상대까지 다 잘못한다고 책망하는 이나
아예 이를 다 무시하고 방관하는 이나,
말리는 이나,
거의 대부분에 대해서마찬가지 상태가 된다.

그래서 이런 관계로 사실 나머지 유형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고 같이 끌려 들어가게 된다.

실제로 이들 입장을 관찰하는 이는 모든 상황에서
그렇게 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 개인은
우선, 5,6,7로 넘어 벗어와야 하고,
다시 그 상태에서 이 방안을 스스로 즐겁고 원해서임하고 행해야 한다.

물론 이 방편으로넘어오지 못하고 그 이전의 상태로 남아 있는이들은
당장은 앞과 같이 서로 행하면서 서로 형을 가하고 남게 되는 것은그 전과 같다.

그러나 하나씩 벗어 나온 사람들이
다시 그들을 벗어 나오게 함으로써
개인적인 차원에서 모두가 다 함께 벗어나오게 된다.

또 벗어 나온 이들이 앞의 1,2,3,4를 행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벗어나온 상태에서 들어가 행해야 한다는 것이 된다.

한 예를 들어
예수앞에 죄인을 데리고 오면 예수가 행한 방식이
여기에서도 똑같이 적용할 내용이 된다.

무엇이 이전과 다른가,
1, 2, 3, 4의 관계에서
이들을 모두 구출해 내기 위해서 그 자세로 임하는 것이고,
그 이전의 이들이 행한 것처럼 서로 서로를 지옥으로 끌고 가기 위한 목적에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그 차이다..


이 모든 것이 다 원래의 1,2,3,4,5,6,7 과 외관이 같을 지는 몰라도
그 실질과 내용 그리고 그것을 통해 향해 나아가는 목적 방향이 다르다.

사실 이것이 최종적인 방안이라면 방안인데
그것은 상대와 자신을 모두 하늘의 방향으로 이끌고 나가고자 하는 목적으로
상대와 자신의 장 단점을 모두 함께 보고
그 모두의 장점은 키우고 새로 만들고
단점은 늘어나게 하지 않고 새로 만들지 않게 하여
이 모두를 악과 고통의 상태에서 구출해내고자 하는 데
주된 핵심을 두기 때문이다.

///
사실 그래서 그런 방향으로 그냥 즐겁게 행하면
행하는 이부터 즉시 즉시 앞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편하게 머무르고
또 남들도 그 상태로 편하게 행해 나가게 할 수 있는데

여기에 추가로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렇게 되는 이유다.


우선 1과 2의 상태에 머무르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 불쾌하고 고통에 머무는 것은 당연하지만,
비록 원하는 것을 얻고 머무른다고 하여도 역시 불쾌와 고통에 머물게 된다.

그 원리가 그 대상에 집착하고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에 이끌려 다닌다는
것 때문에 그렇게 된다..

왜 그런가를 묻지 말고,
그냥 그 모습을 지켜 보면 된다.
사회에서 정말 모든 것을 차지했다고 보이는 사람들의 내면으로 들어가서
그 내면이 어떤 상태에서 오가는가를 관찰하면
앞과 같은 결론을 만나게 된다.

어느 재벌이든 어느 누구든
그가 얻었든 못 얻었든
다 같은 상태에 머무른다..
얻어도 그 상태에서 계속 불안하고
잃을까봐 불안하고 두렵기도 하고
실제로 다시 잃으면 속상하고
그 사이사이에 잠시 잠시 쾌감을 얻는 것과
상대에게 욕하고 화를 내면서 잠시잠시 휴식과 상쾌함을 얻는 것 이외에
또 다시 빨려 들어가는 것은 반복된다.
그 잠시 얻는 쾌감 즐거움등이 사실
나머지 긴 기간의 불쾌와 고통을 느끼게 해주는 반대 요소이기도 하다.

결국 문제상황을 간단히 정리하면
원하는 것을 얻는 경우에도 갈증을 일으키는 탐욕이나 분노나 어리석음의 문제가
하나도 해결되지 않는 가운데 수렁에서 허우적 거리는 상황에 남게 된다.

반대로여기서 벗어나오는 방안은
원하는 것을 얻거나 얻지 못한다해도
앞의 탐욕 분노 어리석음 그 어느 것에도 묶이거나끌려 당하지 않는 가운데
늘 좋음을 얻는 상태에서
이 관계를 벗어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도 된다

그러므로 결국 원하는 것을 얻거나 얻지 못하거나
두 경우에 다 관계없이 늘 좋음에서 머무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 원하는 내용- 그것이 있으면 좋다고 보는 내용 하나하나마다 그렇다.

그것은 자신의 생명, 신체, 재산, 가족, 명예, 등등 그 모두가 그렇다는 의미다.
이것을 하나하나 두고
이것이 있거나 없거나 다 나에게 괜찮다, 좋다라는 상태가 되지 않으면
또 반대로 말해서
거기에 묶이지 않고 벗어나오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의미다..

놓지 못하는 부분에서 다시 끌려 들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명에서 놓지 못하는 이는
바로 그것때문에 끌려 들어간다..
다 놓다가 신체에서 걸리는 이도 그렇고
다 놓다가, 가족이나 명예에 걸리면 곧바로 끌려들어가는이도
상황이 같다..

그래서 처음 재벌이 수조원에 집착하는 것이나,
노숙자가 신체에 집착하는 것이나
문제가 같다고 한 것이다.

실제 신문을 봐도 다 사건들마다 그 사정과 연유가 그렇다.

그러니 먼저 자신이 이 모든것에서
그것을 얻던 얻지 못하던
아무 관계가 없다.
다 괜찮다. 무방하다는 마음을 얻지 못하면
이후의 방안이란사실 가능하지 않다.

괜찮지 않은데 어떻게 안 집착할 수 있으며
집착하는데 그 묶임에서 어떻게 풀려날 수가 있고
묶여 있는데 어떻게 행하던 모든 것을
방향을 달리해서 벗어 나오고행할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반대로 앞처럼 벗어난
그 상태가 된 후
앞의 1,2,3,4,5,67에 들어가
해결을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그것을 근본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이 사실 자체를 올바로 보고
집착을 어느 곳에도 두지 않는 자세가 요구된다.

반대로 말하면 그 집착이
앞에서 어느 경우에도 그것을 가능하지 않게 만든 근본요소이기 때문이다.

왜 얻었는데도 편하지 못한가..
얻은 그것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그것을 얻지못하는 상황, 잃어버리는 상황, 그 가능성 모두에
굉장히 싫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얻어 놓은 것에 매달린다..
이것이 꼭 그 좋은 것을 가져야 하고 취해야 하고,,하는 마음이고
그것이 곧 집착증세라고 하는 것이다.

그 집착을버리기 위해서는
자신이 얻고자하는 것들이
사실은 자신이이미 그 모든 것을 다 갖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도 알아야 하고
또 본질적으로 다 부질없는 허깨비에 불과한 내용들이라는 것도 알아야 하고
그리고 실제로티끌처럼 가치없기도 하고 악하기도 한 독이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왜 자신의 등기나 소유가 아닌데도 자기것이라고 하는가..
등기나 소유를 해도 지금 자신이 마음에 얻어 놓은 그 이상은 결코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마음에서 얻어 놓은 것은 이미 자기것이고
희망이 성취된다는 것은
사실은 그런 바탕에서
희망의 내용을
처음 앞에서는 희망의 내용으로그려보고 인식하고
뒤에서는 희망이 성취된 내용으로 그려보고 인식하는 두 번을 행하면서
좋다고 하는 것 이외에는 아니다.
그 가운데 있어야 한다고 고집하는 감각할 만한 외부사실은
그 실재는 얻을 수 없고
단지 만지고 볼 때만 얻을 뿐인데
그것은 늘 그 순간뿐이고정말 머무르지도 않고 유지되지도 않는다..
그 안에서 내것이다 남의 것이다 나누는 것이 그 감각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앞에서 본 것처럼 희망을 하고 인식을 하는 관념의 차원에서 이름의 차원으로
분별 망상을 되풀이하는 가운데 일어나는 일이다..

만일 그렇지 않고 어떤 재벌이 하나의 물건을 만지고 향유하거나,
또는 한 사람이 커피 점에 가서 한 번 커피 마시고 나서
이후 생각날때마다 그 물건이 있는 곳이나,
커피점에 들르지 않고
매일 되살려내서 그 맛 감각들을 직접 꺼내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지 않다는 의미다..

그런 재주가 있다면 모르되 그렇지 않다.
그러는 가운데 최종적으로 각 주체에게 의미를 주는 것은
그런 관념 분별로 의미를 인식할 때이다.
이후 얼마나 시끄러운가 하면 바로 이 분별때문이다..

더 복잡해진 감은 있지만,
놓여 있는 기본 상황이 이것인데

감각은 감각하는 사람의 마음안에 이미 다 얻어 놓은 것을 가지고
다시 관념은 이를 마치 남이나 외부사실인것인양 생각하고
이를 내것 남의 것 나누면서 시끄럽게 번뇌에 휘말려 들어간다.

그런데 자신의 마음안에 들어오는 감각내용외에
정말 외부사실의 실재를 얻는 사람이 단 하나라도 있는가 살펴보면
하나도 없다..
그러니 허깨비 놀이를 하는 것이라고 보게 되는 것이다.

그 꿈과 같은 현실 속에서
같이 편안한 꿈이라도 꾸면서 지내면 좋을텐데
서로 악몽을 꾸고 또 꾸게하면서
얻지도 못하는 것을 가지고 계속 다투고 나아가니
안타깝지 않은가..

물건 하나도 그렇게 갖지 못하고
아내나 남편 하나도 그렇게 갖지 못하고
아이도 그렇게
모두 그 실재를 얻어 갖지 못하고

그렇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현상 안에서는 모두가 내 마음안의 감각한 내용으로 들어와 있기도 하고

그러나 또 관념의 영역에서는
어떤 것은 내것으로 등기 등록을 마친 것이고
점유하고 있는 것이고
내게 수익을 가져다 주는 것이고,,,
관리 처분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어떤 것은 아니다..
그런 생각을 기초로
또 그 각각마다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을 일으켜 추구하고
그런 가운데 서로 서로 갖기도 하고 뺏기기도 한다고 생각하므로
점차 이 꿈의 내용이 서로 험악한 내용으로변하게 된다.

지옥으로 향해가서 서로 피를 뿌리고 혀를 뽑고
다리를 끊고 하면서도 서로 좋다고 하면서
나오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것이 역시 꿈과 같다고 알면서 거기에 뛰어들어
어떻게 벗어나게 해보려고 하는 이는
그래서 사실 그 악몽에 같이 뛰어들어 지켜봐야 한다..

마치 종군기자가 전쟁의 참화를 사진찍으면서
이 전쟁의 참화를 막어보려고 한다면
그 전쟁의 현장 속에 뛰어들어가서 지켜봐야 하듯

역시 같은 이치로 지옥에서 사람을 구출하려면
스스로 지옥에 뛰어들어야만 가능하다는 의미다..
그러나 무엇이 다른가하면
그 목적이나 그가 보는 내용이 다르다는 점이다.

그러나 사실 더 좋은 것은 처음부터
그 지옥으로 모두 다 함께
걸어들어가지 않도록 처음부터 예방하는 것이
훨씬 더 좋다고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