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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이념과 대리인의 이념

작성자:Real Is

현실 사회를 생각할 때

왕이 자신의 사회를 놓고 생각하는 이념과
대리인들이 사회를 놓고 생각하는 이념이 차이가 납니다.


왕에게도 주의할 바가 있고
대리인들에게도 주의할 바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우선 주의할 것은
이미 이이와 같은 이가 경계했던 내용처럼
혼자 있을 때의 마음을 주의하는 것이 모두 기본적으로 필요합니다.

혼자 있을 때란, 결국 나만 생각한다는 자세를 말하기도 합니다.
내가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다하고 싶어도
혼자 있을 때는 허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혼자 있을 때
누워 있거나 속옷만 입거 있거나 해도 자신만 편하면 됩니다.
그런데 경계하는 것은 그런 것을 해서는 안된다거나
그런 마음이 문제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나 생명을 상대로 해서도 그런 마음으로
희망을 갖고 생각하고 살아가고
또 태만히 하고 게을리 하는 마음이 문제라고 할 것입니다.

내가 정말 나 혼자 우주의 왕이라면,
내가 여기서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한들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하고 방자해지는 마음을
갖기 쉽습니다.

그래서 결국 혼자서만 있을 때 생각하는 내용들은
대부분이 자신의 본능적인 욕구에 충실한 내용들로
구성되게 됩니다.

마치 갓난아이나 어린아이가 다른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욕구만을 바라보며
모든 것을 보채고 떼쓰는 상태와 같은 내용들입니다.

어떤 한 청년이 방안에서 혼자 공상하면서
100억이 생기면 어떻게 하고 싶다거나,
자신이 황제가 되면 어떻게 하고 싶다거나,
할 때 갖는 생각도 사실은 이와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마음을 스스로 경계하지 않으면
그 마음을 바탕으로 밖에 나가면
교만해지게도 되고,
또 현실은 사실 그렇지 않으므로 자신과 부딪히는 다른 상대들을 대하여
악한 자세로 상대를 대하게 됩니다.

결국 이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고집하면
악한 상태가 되므로
또 이이는 이런 태도를 혼자 있을 때에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게 됩니다.

심리적으로는 본래 모든 생명이 이런 본능적 욕구를 갖추고 사는데
이 부분을 원초적인 자아[원초아-id] 라고 보고
다시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쾌를 합리적으로 추구해나게 되는 의식적인 부분을 자아[ego] 로 보는데
결국 이 모든 내용은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서 사회적으로 규범적인 내용으로 제어를 받게 됩니다.
법률이나 규범 윤리적인 내용들이 그것인데 그것은 한 개인에게는 앞의 욕구를 억제시키는
억제자(super ego초자아)의 부분으로 보게 됩니다.

이들 각각이 한 개인에게 요구하는 내용이 사실 매 상황마다 다 다릅니다.

한 사람이 재미있는 영화를 보는데 졸립니다.
졸려서 자고 싶다는 것은 거의 본능적인 요구라면,
그래도 내일은 바쁘고 영화는 지금밖에 볼 수 없으니 지금 보고 나서 자는게 좋은 것 같다는 것은 합리적인 쾌의 추구방안에서 나오는 요구이고,
그러나 그런 저속한 영화는 보지 말고 차라리 성경이나 경전을 보고 반성하고 참회기도하고 좋은 희망이나 추구 실천하라고 하는 것은 규범적 윤리적 요구입니다.

이 여러 내용이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난다면 이들이 서로 충돌되어 선택시나 추구시에 여러 갈등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래서 이들을 모두 조화롭게 만족시킬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게 됩니다.
이 갈등을 심리적으로 잘 처리하지 못하면,
여러가지 부작용이 나타납니다.
너무 본능적 욕구를 억제하는 것으로 일관하거나,
너무 본능적 욕구에만 충실하거나,
다 문제가 일어나게 됩니다.

심리학적으로는 본래는 자신의 본능적 욕구에 충실하려고 다들 하고,
자신의 이성으로 이를 합리적으로 배분 선택해가며 추구하게 되는데
이것이 현실생활에서는 서로 부딪히게 마련이어서
규범적 요구가 만들어지고,
그래서 한 개인에게도 이런 본능적 욕구를 스스로 억제하고 억압하는 초자아 같은 부분이 있게 된다고 하는데
다시 이들간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극복 방어하기 위해 여러가지 처리를 하게 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여우가 포도를 따먹고 싶은 데 먹지 못하자..
먹고 싶은 본능적 욕구와 못 먹는다는 현실에서의 갈등을
저것은 신 포도일거야~ 라고 생각하여,
신포도는 안 먹는 것이 낫다..라고 생각하고 갈등을 풀고 마음의 만족을 얻는 데 성공한다면,
이 부분 즉 저 포도는 신포도다 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일종의 방위기제로 성공적으로 작동하여
마음의 갈등을 해소시켰다라고 보게 됩니다.

원래 이솝 우화에서 나온 이 신포도 이야기는
포도를 못 따먹고 자신을 위안시키는 여우를 조소하고자 하는 내용으로 많이 생각하지만,
그 우화가 들려주는 교훈은 그것만은 아닙니다.

여우가 처음 원한 포도를 못따먹는다는 것을 아는 순간 바로 그 단점을 바라보고 포기하여 마음의 불만을 없앤다는 부분은
심리학에서 방위기제가 갖는 긍정적인 기능이기도 합니다.
만일 이 방위기제가 작동하지 않아서,
만일 못따먹는 여우가 계속 그것만 바라보고 불만을 갖는 가운데 이후 생활을 한다던지,
포도를 따먹는 다른 동물을 쫒아가 괴롭힌다던지,
아니면 포도나무 밑을 갉아서라도 정말 따먹었는데 그것이 정말 신포도였다던지 하는 경우에 비해
이 방위기제를 잘 발휘하여 다른 보다 좋은 것을 향해 간다면,
그것이 프로이트가 말한 방위기제가 잘 작용하여
본능적 욕구 [id-원초아]와 규범적 욕구[super ego-초자아]의 내용이 서로 모순 충돌되어 자아[ego]가 고통받는 상태를 벗어나 현명하게 잘 살아가는 방안이기도 합니다.

물론 위 내용에서는 윤리적 요구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위 이야기에 따먹을 수는 있는데 더 갈증을 느끼고 배고파 하는 학이 나타나자, 이를 양보했다는 부분이
나온다면, 어떤 초자아적인 요구를 따라야 한다는 교훈을 이솝이 말하고자 한 우화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하튼 초자아란
간단히 말해 사회규범이나 도덕률 성인들이 가르치는 계율과 같은 것이어서
대부분은 본능적 요구를 억제하라고 요구하고
이를 위반하면 --어떤 고통이나 불쾌 -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되고 --
자신의 말을 따르면 - 즐거움- 천국에서 살게 된다는 관계를 말하고
그래서 자신에게 -해야한다 -하지 않아야 한다는 식으로 의무를 명하고
윤리적 요구를 하고 본능을 억압시키는 내용이 대부분이 됩니다.

결국 본능적 욕구를 희생시키라는 의무규범인 것이어서,
이를 따르면 사회적인 칭찬을 받지만,
희생되는 본능적 욕구 때문에 불만에 빠지게 됩니다.

///

그래서 사실 더 지혜롭다면,
이 초자아적인 규범을 본능적 내용과 결부시켜
양 장점을 모두 섭취하면서 초자아적인 규범내용을 잘 실현해내는 방안이 필요하게 됩니다.

간단히 말하면 여러 기준에서 자신에게 요구되는 여러 모순내용이 일으키는 갈등을
해소시키면서도 그 가운데 가장 좋은 내용을 또 가장 즐겁게 행하는 방안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방위기제가 이런 식으로 활용되어 가장 선한 규범적 내용을
가장 즐겁게 잘 --본능적 욕구를 추구할 때처럼 - 해낼 수 있다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보게 됩니다.

반대로 본능적 욕구를 - 가장 잘 - 의무감으로 억지로 완수했다[초자아] 이런 경우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게 됩니다..
어떤 경우인가하면 대를 잇게 하고자 하는 부모의 소원을 들어주고[초자아] 상속을 받아 편안히 잘살기 위해[자아], 마음에도 안 드는 데 ,,,강제로 ,,어떤 행위를 잘 해서 아이를 낳았다. [ 원초아] 이런 경우입니다.

이 보다는
차라리 이웃을 사랑하라는 성경의 말씀을 듣고 [초자아 ] 버려진 가난한 장애아 아이를 입양시켜 --- 마치 자신이 직접 낳은 아이를 대하듯 -- 사랑하고 키웠다..이런 경우가 바람직하다고 보게 됩니다.


이야기가 이미 길어졌지만,
이런 여러 요구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추구를 하며
어떻게 여러 요구사이에서의 갈등을 해소하는가는
개인적으로도 문제가 되지만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사회문제에서 왕이 있다고 한다면,
왕은
자신의 즐거워하는 내용을 놓고 생각하게 됩니다.

1 나 혼자만 이 국토 이 백성을 모두 소유 지배하는 이니 이것으로 나 혼자 마음껏 즐거워하자.

1 이 국토와 백성도 즐겁게 해주고 싶은데,,내가 즐거워하는 내용을 기준으로 모두 즐기게 해주자..
내가 술을 좋아하고 고기를 좋아하니, 이것을 모두에게 다 강제로 먹여 즐거움을 누리게 해주자..

1 이 국토와 백성들을 즐겁게 해줘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스스로 자신이 즐거워하고 좋아하는 것이 각기 다르다.
따라서 내 마음에는 조금 들지 않지만 되도록 각기 좋아하는 것을 따라서 각기 즐거워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자..

대강 위와 같은 유형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한 가정의 가장인 아버지가 가족 구성원을 생각할 때도 이런 여러유형이 실제로 있습니다..

내가 피아노를 잘 치고 싶었는데, 못쳤다..
아이만은 꼭 피아노를 세계에서 제일 잘 치게 만들고 싶다..이렇게 아이를 바라보고 대하는 이도 있고

아이가 원하는 것을 잘 해서 자신도 이롭고 사회에도 기여하고 선한 뜻을 잘 펼쳐
결국 자신도 행복하게 되게 하자.. 이렇게 아이를 바라보고 대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간혹 이도 저도 아니고
아이는 내 소유물이니, 내 마음에 드는 대로 마음대로 하자.
심부름도 시키고, 내가 하는 일을 잘 도와서 할 수 있도록 키우고
나중에 다른 좋은 집안과 결혼시켜 그 집안의 덕도 보고 아주 나중에는 나를 잘 부양하게 만들자..

이런 생각으로 아이를 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회 전체의 모습을 보고 대할 때도 또 같습니다.

결국 어떤 입장에서 이 전체사회를 보고 전체 사회 속의 시스템과 상호간의 관계를 보고 대하는가가
문제인데,,

결국 전체 사회가 사회 자체적으로 문화적으로 발전되고
사회 전체가 발휘하는 힘이 강하고 또 부유할 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의 복지체계가 잘 구성되어 사회구성원은 건강하고 행복하게 되고,
이렇게 구상하는 동시에
이 사회가 또 다른 사회와의 관계에서 서로 돕고 발전해가는 상태로 만들자.
즉 세계에 평화를 실현시키고 서로 함께 번영하는 상태로 만들자 이런 구상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대로
역시 앞의 예들 처럼 다른 희망을 가지고
노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각부분간에 갈등이 있을 때도 역시
현명하다면 이 모든 갈등을 다 조화롭게 해결해서
가장 좋은 상태로 모두 조화를 이루게 할 방안을 찾으면 됩니다만,

그러나 반대로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습니다.

결국 한 개인의 예에서 본 문제는
사회 전체와 각 부분 각 개인간에서의 서로 다른 요구간에서도
같은 형태로 문제를 일으킬 수 있게 됩니다.

지혜롭고 현명한 이가 추구하는 것은
이 모두가 다 오래오래 좋은 상태가 되는 방향이고
그 방안도 선하고 지혜로운 방안인데 반해

그렇지 못한 경우는
광폭한 광인이 스스로의 갈등을 해소하지 못해
술마시고 난폭하게 행하고,
또 한편 통곡을 하거나 울부짖고 넋두리를 하고
나중에 유치장에 갇혀 횡설수설 해대는 상황과도 같습니다.


왕과 대리인을 먼저 나열하는 것은
사회에 대한 희망은
본래 각 개인의 본능적인 자신이 아니기에
이 사회를 직접 자신과 자신의 것으로 관하고 대하는 입장과,

남들, 남의 것으로 관하고 이들 남의 요구를 받는 동시에
그 일을 행하면서 그를 통해 자신의 이익의 극대화를 꾀하는 대리인의 입장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대리인은 그렇게 사회를 보고 대하므로,
결국 이 대리인이 자신의 능력을 잘 발휘하면 할 수록
사실은 그 사회 나머지에게 해를 끼치게 됩니다.
그래서 늘 주인이 그 대리인이 주인을 위해서만
그 능력을 잘 발휘하여 맡긴 업무를 잘 처리할 수 있도록
감시 감독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할 필요가 있게 됩니다.

그것을 잘 하지 못하면,
마치 부모을 잃은 아이들의 유산관리를 맡은 대리인이
모든 실질 재산을 자신에게 돌리고
아이들은 고아원에 맡기고 도망가버리는 사태가 일어나게 됩니다.
원래 대리인이 이 상황을 바라본 입장과 원래 대리인이 가진 목적이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대리인에게 업무를 맡긴 주인이 또 여럿 있다면
이들 가운데 이 대리인이 주로 어떤 주인의 이익을 꾀하는가에
따라서도 역시 동일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어떻게 되야 하는가..

모든 사회구성원이 다왕의 마음으로임해야 하고
또 그 왕 가운데에서도
폭군이나 어리석은 왕이 되지 말고
모든 사회부분과 사회 구성원들의 제각각 다른 요구를
다 잘 조화롭게 만족시키면서도
또 전체적으로 가장 좋은 상태를 잘 추구하고 실현하는 현명한 왕이
제각각 다 되야 한다..입니다.

또 그 각 개인들은

가장일 때는 가장으로서 그렇게 행해야 하고
개인일 때는 또 개인의 마음안에 들어 있는 여러 내용에 대해 그렇게 행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이드 [id]

이드 [id]


요약
자아·초자아(超自我)와 함께 정신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 또는 한 영역.

본문

정신분석 용어. 이것은 본능적 에너지, 리비도(libido)의 저장고이며 쾌락을 추구하고 불쾌함을 피하는 쾌감원리(快感原理)만을 따른다. 여기서는 도덕도 선악(善惡)도 없으며 논리적인 사고도 작용하지 않는다. 시간관념도 없고 무의식적이다. 어린아기의 정신은 거의 전부 이드로 이루어졌는데, 뒤에 이 이드의 일부가 외계와 접촉 변화하여 자아가 형성된다.

S.프로이트는 이드를 독일어로 에스(Es)라고 하였다. Es는 영어의 it에 해당하는 말인데, 이것을 영역(英譯)할 때 자아(自我)를 에고(ego)라고 라틴어로 번역하였으므로 it에 해당하는 라틴어 이드를 사용하기도 한다
[출처] 이드 [id ] | 네이버 백과사전


자아 [自我, ego]

요약
사고, 감정, 의지 등의 여러 작용의 주관자로서 이 여러 작용에 수반하고, 또한 이를 통일하는 주체.


본문
따라서 그것은 그때그때의 사고 ·감정 ·의지의 각 작용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속성과 동일성을 지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또한 자아의 구체적 내용은 그때그때의 각 작용의 내용과 관계없는 것은 아니며, 그것들에 반성의 눈을 돌림으로써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다. 여기에 자아란 문제의 복잡성이 있다.

철학상 자아의 자각은 ‘너 자신을 알라’를 가르친 소크라테스에게서 비롯되는데, 자아의 문제가 철학의 주제로 된 것은 인간의 주체성이 확립되는 근세 이후의 일이다. R.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명제에 의하여 ‘생각하는 나’를 정신이라 부르고, 이를 항상적 실체로서 확립했으나, D.흄 등의 영국 경험론은 그때그때의 감각 ·감정을 떠나서 자아는 없고 그것들의 총체가 바로 자아일 따름이라고 하여 자아의 정신적 실체성을 부인하였다.

이리하여 자아의 정신적 실체성을 주장하는 합리론의 입장과, 그것의 감각적 다양성을 주장하는 경험론의 입장이 서로 대립하는데, 이것에 인식론의 관점에서 해결을 부여한 것이 칸트이다. 칸트는 자아의 실체성은 이를 부인하지만, 그러나 인식의 가능성의 근거는 경험적 자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경험적 표상(表象)에 필연적으로 수반되지 않으면 안되는 ‘나는 생각한다’라는 통각(統覺), 즉 선험적(先驗的) 자아에 있다고 하였다. 또한 독일 관념론의 J.G.피히테는 이 선험적 자아를 형이상학적으로 절대화하여 전실재(全實在)를 포괄하는 절대적 자아를 구상하였다.

현대철학에 있어, 자아의 문제는 이러한 인식론적 ·형이상학적 관점보다 오히려 윤리적 ·인간학적 관점에서 다루어진다. 사르트르는 그의 철학 논문 <자아의 초월>(1934)에서 모든 표상에 ‘나는 생각한다’가 수반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여 칸트적인 선험적 자아를 부인하면서 《존재와 무(無)》(1943)에서는 ‘나’의 존재가 타자(他者)에 의하여 근저로부터 위협받고 있음에 언급하고, 자아는 그 존재의 근저에 있어 대타적(對他的) 존재라고 주장한다. 또한 부버는 《나와 너》에서 ‘나와 너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너’라고 부르는 타자(他者)와의 만남과 응답에서 ‘나’는 비로소 진정한 자기가 된다고 주장하였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자아에 대해서 극히 명확한 의의를 부여하고 임상심리학 및 일반심리학에서 채용하고 있다. 즉, 인간의 원시적 비인격적 무의식충동(이드)의 욕구가 그 결과로서 발생하는 긴장을 벗어나고 고(苦)를 피하려고 하는 쾌원리(快原理)를 좇아 작용할 때, 의식의 표면에 발생하는 것이 자아이다. 자아란 원시적 충동과 현실의 외계와의 중개자이다. 또한 사회적 규범에 따라 주어지는 상벌 ·금지 등에 의하여 개인의 내부에 정사(正邪)의 의식이 생기고 그것이 자아를 비판한다. 이 부분을 초자아(超自我)라고 한다. 즉 인격은 ‘이드’와 ‘자아’와 ‘초자아’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한다.
[출처] 자아 [自我, ego ] | 네이버 백과사전


초자아 [超自我, superego]


요약
개인의 정신내에서 사회나 이상의 측면과 관계있는 것.


본문
정신분석의 인격이론(人格理論) 중 구조론(構造論)에서 인격의 사회가치 ·양심 ·이상(理想)의 영역. 상위자아(上位自我)라고도 한다. 구조론에서는 인격을 하부(下部)의 충동 ·본능영역의 이드(id)와 의식적 주체(意識的主體)의 중핵(中核)이 되는 자아, 그리고 초자아의 영역으로 나누어 생각한다. 초자아는 대부분 무의식적이다.

초자아의 기능으로서는 개인의 행동에 대해 내부로부터 선악(善惡)의 판단을 내려서 그 행동을 촉진하거나 제약하거나 한다. 또 행동을 비판적인 눈으로 보기도 하고, ‘나쁜’ 행동을 하였을 경우 죄악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착한’ 행동을 하였을 경우 자존심을 높여 주기도 한다. 유유아기(乳幼兒期)에는 선악이 부모나 주위 사람들의 판단에 맡겨지지만, 이러한 가치는 점차 본인 자신 속으로 도입되어 간다.

이와 같은 형성과정에 관하여 S.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기(Oedipus期:性의 역할이 문제가 되는 시기로서 小兒性器期) 이후라고 생각하였으나, 클라인 등은 생후(生後) 반년 정도에서 형성된다고 생각하였다.
[출처] 초자아 [超自我, superego ] | 네이버 백과사전

방위기제 [防衛機制, defence mechanism]

요약
합리적인 적응에 실패하였을 때 자아(自我: ego)가 쓰게 되는 불합리한 적응수단 ·도피 및 일종의 자기기만(自己欺瞞).

본문
인격의 통일성을 보전하고, 현실에 대한 적응을 꾀하는 것은 자아의 역할이지만, 쉬운 역할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곤란한 사태가 일어나며, 개인의 인격은 자아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으므로, 자아와 대립하기 쉬운 초자아(超自我: super ego)와 이드(id: 에스 ‘ES’)를 안고 있는 것이다. 초자아는 도덕적 명령과 금지를 강요해 올 뿐이며, 이드(에스)는 쾌락원칙에 따라 오로지 만족의 쾌감을 구할 따름이다. 이처럼 현실적이 아니며 곧잘 자아와 대립 ·모순되는 초자아와 이드의 요구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또 현실을 목적에 합치하도록 바꾸어 갈 수 있다면, 자아는 적응에 성공하게 되는 셈이지만, 항상 잘 된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합리적인 적응에 실패하였을 때 방위기제가 작용하게 된다. 엄밀히 말하면, 완전히 합리적인 적응을 하는 개인이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누구나 다소간의 방위기제를 쓰고 있는 것이다. 방위기제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며, 어떤 것을 우선적으로 쓰는가에 따라 개인의 성격이 달라지게 된다. 또한 방위기제가 파탄할 때 일어나는 정신질환의 종류도 달라진다. 예컨대, ‘억압’과 ‘히스테리’ ‘반동형성(反動形成)’ 및 ‘분리(격리)’와 ‘강박신경증’, ‘투사(투영)’와 ‘파라노이아(偏執病)’는 서로 깊은 관계에 있다. 방위기제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자아를 위협하는 귀찮고 거추장스러운 관념이나 감정을 의식하지 않도록 내쫓는 ‘억압’이지만, 억압만으로는 이같은 불쾌한 관념이나 감정이 소멸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여러 가지 방위기제가 필요하게 된다. 방위기제로 들 수 있는 것은 많지만, 환자의 방위기제를 분석하여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정신분석 요법인 것이다.
[출처] 방위기제 [防衛機制, defence mechanism ] | 네이버 백과사전

http://100.naver.com/100.nhn?docid=716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