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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을 보다가 네덜란드가 이슬람식 도축을 금지해서 파문이라는 기사를 보고
그것이 가축의 도살전 안락하게 죽이기 위하여 죽이기전 기절시키거나 마취시켜 의식을 잃게 만들도록 한 규정에 관련한 문제임을 보게 되었다.
사실 가축은 인간의 입장에서는 단지 식사의 대상이고
그래서 처음 태어난 시점부터 부정기 사형선고를 받고
가축 축사에서 보호관찰 사육되고 있는 상태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네덜란드 도축관련법에 이런 규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과연 한국에도 이런 규정이 있는 지 궁금해졌다.
사실 어차피 잡아 먹는데, 그 과정이 무엇이 그리 중요한가 생각할 수도 있고,
또 수많은 가축을 잡아 죽이는데,
이들에게 일일이 기절시키거나 마취시킨다는 절차가 무슨 필요가 있는가.
번거롭지 않은가.
또 이런 과정이식품 섭취과정에서문제를 일으킬우려는 없는가.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규정을 도입하여 규정하게 된 바탕에는
불가피하게 가축을 도축하지만,
그 상대를 배려할 만큼은 배려하겠다는 정신이 들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서
약간 네덜란드 사람들이 존경스러워지는 느낌이 든다.
물론 아예 가축을 잡아 먹지 않는데에 이르른다면 더 바람직하다고 하겠지만,
그러나최소한 가축을 배려할 수 있는 만큼은 배려한다는 마음이 엿보이고,
그것이 동물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누군가를 배려한다는 정신은 그 만큼은 아름답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도축현실은 네덜란드에서 문제삼는 유형 가운데
어느 유형에 속하는지 알아 보기 위해
한국의 도축규정을 찾아 보게 되었지만,
관련 규정을 찾아 보지는 못했다..
사실 삶과 죽음의 문제는 가축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도 그 지평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가축과 인간의 차이는 여러가지 많다 하겠지만,
사실 삶과 죽음 그리고 생명의 기본 기능면에서 생물학적인 측면에서는
본질적인 차이는 그다지 많지 않다.
오히려 가축과 인간의 차이를 선명하게 만드는 것은
오히려 네덜란드 가축법이 보여주는 그런 규정의 유무에 있지 않나 생각되기 까지 한다.
남을 배려하면 자신도 배려받는 관계는 똑같이 성립한다.
또 그 반대도 성립한다.
어느 미국의 양계장에서 닭을 도살하는 데
닭을 집어 벽에 내던져 죽이는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서로 서로에게 남의 생명이란 무엇인가,,삶이란 무엇인가,,
자신의 생명은 왜 가치있다고 여기며 남으로부터 존중받으려 하는가..하는 생각이 밀려오는 순간이다.
물론 네덜란드의 이번 문제는 그것이 이슬람이나 유대교의 종교문화와 관련되 관점이 조금 복잡하기는 하지만,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 자신을 되돌아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조금 범위를 벗어나지만,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을 할 때
쥐에게 주사를 놓거나 해부하거나 하는 실험을 하는 순간,
옆에서 이를 지켜보는 쥐들의 혈압이 상승된다는 보고를 어디서 본 적이 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내용을 오히려 의외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그것이 바로 인간이 인간 본위로 모든 현상을 보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쥐 따위가 무슨 문제인가..
실험실 안의 쥐가 다른 쥐가 실험대상이 되는 것을 보고
그 순간 굉장히 공포에 휩싸이고 놀란다는 것이지,,헛,,
순간 이런 생각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나나 나의 가족과 같은
동일한 생명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다.
소가 죽을 때 눈물을 흘린다고 하는데
그것도 많은 사람에게 놀라움을 주는 경우가 있다.
소가 자신의 운명에 대해 슬픔을 느낀다는 사실이 놀라움을 주는 것이다.
개도축업자가 마을에 나타나면
그 마을의 온 개가 쥐죽은듯 조용하다고도 하는데
개가 무엇을 느껴서 그렇게 변하는지도 의문이다.
우리와 비교하면 개는 나름 후각부분에서 초능력자가 아닌가..
그들이 무언가 공포를 느꼈다는 사실이 그런데 놀라운 일인가..
물론 산수문제를 풀거나 과학문제를 푸는 소나 개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들이 하나의 생명으로서 존중받지 못할 이유는없다.
그렇게 함부로 말할 수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렇다고 말하는 순간,
그것은 자신도 자신보다 더 수학을 잘하고 과학을 잘하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언제든지 그렇게 묶이고 잡혀
731 부대와 같은 곳에서 실험대상이 된다해도
그것은 오히려당연하고 마땅한 일로여겨야 한다고 하는 것과 같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신을 기준으로 누군가에게 배려나 존중을 요구한다면,
같은 내용 형식으로
자신이 남에게도 그렇게 행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이치에 와 닿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다.
남의 생명이나 즐거움의 문제가
내게 귀찮고 하찮다고 생각하여 함부로 할 수 있다고 여기면,
같은 내용으로
남도 자신의 생명과 즐거움의 문제를
그렇게 대해도 된다는 내용으로
계약서에 사인을 한 것과 같다고 본다.
앞은 문제가 아니고
뒤부분은 문제라고 보는 것은
그것이 바로 문제가 아닌가,,하는 생각이다.
서로 남의 죽음 고통을외면하고무시하며 지내면,
자신이 그렇게 입장이 바뀔 때도
다른 이들을 탓할 이유가 무엇인가..
doctr님이 말한 먹, 싸, 놀, 하, 쉬, 자는 욕구를 놓고 볼 때,
나도 그것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면서 살아가고 있고
내가 하찮게 여기는 다른 생명도
그것에 충실하면서 살아가는데
내가 인간으로써 뛰어나다면
얼마나 뛰어난 것인가...
오히려 더 못한 점이 많지 않은가...
난 그런 의미에서 식물을 존경한다...
고통을 느끼지 않는 대상을
통해 생명을 유지하고,,
그리고 모든 동물의 삶의 기초가 되어주는 것은
왠지 성스럽지 않은가...
뭐 독초,,,?
음~~~이 경우는 성스럽지 않은 동물에게 약이 되어 주어 성스러운가?
>>>
fr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1061501032532071002
네덜란드 ‘이슬람식 도축’ 금지 ‘파문’
“이민자에 대한 탄압”-“동물 권익보호” 갈등 확산
오애리기자 aeri@munhwa.com | 게재 일자 : 2011-06-1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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