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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1-soci

소외 현상에 대해

작성자 : Lab value
● 소외란 말은 좀 어려운 말이다.




그런데 또 많이 쓰는 말이다.

little 님이 댓글을 본인으로부터 삭제당하면서 소외란 말을 사용한다.
사실본인 프로필 자체가 의미하듯 본인이 외계인 신분이므로, 그런 대접은 상응한 것이기도 하지 않은가 하지만,,,^^

사실 개인적으로도 처음 소외란 말을 대했을 때는 정말 이 말이 생경하고 낯설어서 이 말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은 소외된 말이기도 했다.

이는 본래 쉬운 말에 어려운 이상한 의미를 담어서 사용하는 현상 때문이기도 하다.
본래 이단어가 그렇게 어려운 말은 아니다. 그런데여기에는 많은 철학자나 사상가가 담어 놓은이상하고 어려운 의미가상당히 들어 있다. 그래서 어렵게 느껴진다. 또 그런 사정으로 도움될 만한 사전 백과사전 내용을 첨부해보지만 그런데 이를 참조하고부터 이 단어가 또 소외되기 쉽다.

**

● 그러나 현실에서 사용하는 소외란 말의 의미는 쉽다.

예를 들어 이번 여행에 little 님이 함께 가기는 갔는데왠지 중심 역할에서 따돌리거나 배제된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여행지 결정에서부터한 번도 little 님의 의사를 누가 물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사후 브리핑과 설명을 들어 보지 도 않았다.
그러나 여하튼 가서 함께 놀기는 한다. 그런데 그래서 그런지뭐든지 생소하고 생경스럽고 낯설게 느껴진다....역할 분담도 이상하고 그래서 무언가 겉도는 느낌이다.
자신이 행동하고 움직이기는 하는 데 왠지 중심 주체가 아니고 부품인 듯 하다.
그러면서 사랑도 받지 못하고 관심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겉돌고 남도 겉돌게 만들고 하는 듯하다.
전체적으로 결국 이용당한 듯 한데 단지형식적으로만 아닌 것 같다.
이런 여러 관계로 속으로 짜증이 나고 욕이 나오려고 하고,,,,
=> 불만 불쾌함에 빠지면서
소외 당한 것 같다...배제 당했다..이방인 취급 당한다...주체가 아닌 것 같다...
이런 말을 한다.
여행지 자체의 명칭부터이해가 안 된다..그래서 적응도 안되고,,=>엥~~~


이런 종합적인 느낌을 받을 때 자신이 소외당했다라고 말하게 된다.
한 마디로 이방인 취급 받았다 하게 되고,
그래서 결국 소외되어 외롭다던지,,
관계되는 모든 것에서 자신이 이질적이고분리된 느낌을 받는다는 증상을 갖는다...

● 사회적으로도 이런 현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어느 지역 계층이 소외당한다..등은 예민하지만 현실에서 대단히 문제된다.
서울만 해도 강북 강남 말을 자주 하는데
강북 사람은 그런 피해의식을 갖는다..
결국 비슷한 현상을 여기저기서 토로한다..


이것 참 문제다..

물론 모든 브리핑과 계획 취지를 Mun님으로부터 하루전에 다 들은 본인도 그런 심정은 갖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러나 하루 여행 동안 주체적으로 재미있게 놀다가 오는데 충실했는데
그래서 정신이 없지만, 논 것이 나지 다른 사람인가..

그런데 차를 타고 가며 옆에서 느낀 것은 Mun님이 모든 사회활동에서 오래전에 황제로 즉위하여 주체적으로 잘 사는줄만 알았는데
정작 말을 들어보니 ....그러나 현실은 ,,,,하고 말하기 시작하면서읊어 대는내용은 그 반대라는 사실에 적쟎이 놀라게 된다.그러나 현실은,,, 하고 말하는 부분부터를 듣다보면정말 이 분이소외당한 채 살고 있음을 스스로 말하고 있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little 님도 그렇고 mun 님도 그렇고
다 같이 가기는 하지만
서로 혼입만 되었을 뿐 이 가운데 누구도주체적으로 내용을 정한 적도 없다.
또 사실 같이 모두 어울려 놀지만 그 어느 누구도 앞의 내용을 모두 홀로 갖춘 그런 주체가 발견되지 않는다.
이런 상태에서 다 마찬가지로 이상한 곳에서 함께 어울려 논 것 만은 사실인데
그렇다면누가 소외당하지 않고 논 것인가..

이것이 사회나 개인의 삶의 문제라면 누가 현실에서 소외당하지 않고 사는가...의 문제에 동일한 형태로 봉착하게 된다.


특히 아래 참조로 붙인 내용을 보면 알지만
이 소외라는 단어가 포함시켜 갖는 의미는 매우 다양하다.

○ 우선 심리적으로
자신이 평소익숙하고 친근하게 받아들여 살던주변 내용이
어느 순간 이질화되어 낯설게 느껴지면서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인다거나,,

○ 어느 것의 본질로 보는 성질들로부터 이탈되거나,

○ 헤겔같은 경우는 주인과 노예 물질성질의상호관계에서
누군가 주인 아닌 입장으로 관계가 될 때 느끼는 현상을
이와 관련시키기도 한다.

○ 또 사회적으로는 막스 사상가들이
노동자가 노동현장 삶에서소외현상을 느끼게 된다면서
이 원인을 생산수단의 소유와 노동의 분리 때문이라고 본다.
그리고이 해결을 혁명에서 찾는다.

그래서 이런 여러 의미등이소외라는 단어와 깊게 관련된다..


그래서 이 용어가 점점 어려운 의미와 관련된다..

우선 각 철학자 사상가의 배경 주장부터 이해하기 힘들다.
따라서 그상태에서 함께 그 단어의의미를 이해하기 힘들게 된다.


그러나 쉽게 생각한다면,
little 님이 이번 여행에서 느끼는 현상을
삶에서 사회 생활속에서든 개인적 생활속에서든 느껴 문제될 때

결국 이 같은 현상을
각 철학자나 사상가도 느끼고
문제로 제기한 것 아닌가. 그리고나름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 아닌가...라고 쉽게 이해할 수 있다.

///

● 그런데 이상한 것은
주인이나 생산수단의 소유자로 볼 만한 기업 경영가 지주 등에게서도
그 소유대상이나 인간관계에서분리 현상은 발견된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그것으로 소외되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그 간단한 이유는 주인이나 소유자들이그 분리로 인해 편의를 보지
불만을 토로 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복을직접 빨아 입지 않고 입는 옷을 직접 꿰매고 깃고 하면서 만들어 입지 않아서,
또는 자신이 사는 집을 자신이 직접 애써 짓지 않아서
또는 자신이 먹는 음식을 자신이 직접 만들지 않고 식당 메뉴에서 그날겨우 찾아내 먹게 되었다고
자신이 삶의 필수 구성부분 의식주들로부터 모두 소외당한 채 이질적으로 산다고 생각하는 이는 드물다.

반대로이런 분리는 편한 것이고 좋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분리 현상에서 반대쪽 역할을 맡는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이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결국 자신이 이 분리현상에서
힘도 들고 노력도 열심히 하는데
그로 인해 그 가운데 단 맛이라고 느낄만한 부분을
종국적으로는 상대적으로 다른 이보다 많이 갖지 못한다고 느낀다.
그러기에결국 불만을 느낀다.
그리고 그 구성부분들과 관련해 자신이 소외당한다고 불만을 갖는다.

● 결국이 심리현상이 분리된 각 주체사이에서
누군가 특정 개인에게는 분명문제이고 사회적으로도 분명 문제다.
그래서 그 문제된 부분에서 치료가 필요하다.


● 또 한편 다른 측면에서 치료가 필요한 이들이 또 있다.

우선 기업가나 재벌을 생각하면 사실, 그는 자신이 소유한 것으로부터
대부분 직접 점유하거나 감상 감각 하지 못한 채
관념상 지시하고 성과를 보고 받고 살아간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주인의식이 확고하다.
그리고 실제 핵심적 결정은 그가 행하고 이끌어 가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의문은 그런 그 자신의 그런 의사 뜻은 어디서부터 나오는가
자신이 모두 소유하고 지배한다고 관념하는데
그 실질 내용은 무엇인가.
숫자와 권리 증명 종이외에 그 실질 내용의 실질 내용들이 무엇인가.

예를 들어 집을 임대해주는 소유자는
그 임대기간 동안 그 집에 들어가는 것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 집을 담보로 대출도 받고 팔 수도 있겠지만, 사정이 그렇다.
소유는 하지만 그 소유대상이 점유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야 할
여러 요소가 실질이 공허하다.

관념상 어떤 미치광이가 우주의 별을보고 세면서
내것이다 라고 외치는 것보다 덜 공허하지가 않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 부분부터 같이 헤맨다.

예를 들어 한 연극인이 열심히 대사도 말하고 행동도 취한다.
그런 연극인은그 자신의 뜻과 말과 행동 태도 모두 사실은 극작가가 쓴 대본에서나옴을 안다.

그러나그 내용을 다시 극작가에게 가서 물어보면
오리 무중이 된다.

여기서 적당히 그것은 극작가의 것이다라고 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깊이 그 문제를 따지고 들어가면
그 주체가 오리 무중이 된다는점이다.

누가 무엇때문에 무슨 다른 생각이 그를 그런 대본을 쓰게 이끌었는가..
의 문제에서 해답을 찾기 힘들다.

그렇다고 그런 내용이 없이, 그저 우연히 그 극작가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극작가도 없다.

원인이 여기저기 있는데
그 것이 모두 자기것인가.아니다..자기를 거쳐 나왔음은 알지만 그런 의미에서
앞의 연극인이나 극작가나 거기서 거기라는 말이다.


그래서 정작 소외현상으로부터 문제가심한 것은

우선 사실은 자신이 주체인데도 자신이 주체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소외당했다 하면서 사는 것도 문제는 문제이지만,

그보다 실질적으로는주체의 역할을 하나도 못하면서도
그러나 자신이 주체라고 적극적으로 믿으면서 사는 경우도 문제가 심각하고
앞 경우와똑같이 문제라는 것이다.

왜 이런 문제제기가 양면에서 제기되는가 하면
진정 최고의 상태에서 자신의 의사에 의해 명령 내려 집행시키고
소유하고성취 결과물을 맛보고 성취감을 보는 이가
그 순간에서도 사실은
자신안의 또 다른 내용들
즉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에 의해 이끌려 다닐 뿐이어서
그는 이런 요소에묶여 있고

그로 인해 노예처럼 죄인처럼 병자처럼 고통받고
결국 앞에서 본 문제현상을 모두 일으켜 갖는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을 많은 성인이
최종 문제로 심각하게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깊이 생각하면
그 지적이 사실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 누구의 주인인가의 문제에서
진정 자신이 자신의 주인이라고 답할 수 있는 이는 드물다.

그러면서 단지 그렇게 믿을 뿐이다..
그래서 한편으로 이 문제가 더 어렵다.

● 그런데또 한편 앞과 같은 의미도
자신이 자신의 주인이라면
누구나 늘 자신이 대하는 모든 현상에서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사는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막상그 주인공만은
스스로 그 현실 안에서 늘 자신이 부품의 대우를 받고
엑스트라 배우의 대우를 받고
정말 노예, 죄인, 병자, 빈곤인,,등의 역할로만 산다고
자신이 스스로 받아들이고 산다면 이 역시또 문제라는것이다.


생각해보면 어떤 한 사람이
그 스스로 인도를 가든, 아마존을 끌려 가든
그가 대하는 모든 세상의 모습 안에서
누군가 꼭 그 자리에 있음을 발견한다면
사실 그런 이는그가 대하는 전체적인 영화 화면에서 늘 출연하는 배우인 것이며,
그래서 결국은 그가 주인공인 영화를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영화에서 잠시 차지하지만,
수시로 바뀌기도 하고 하는 것들은
소품이고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이 엑스트라 역할을 맡은 사람이다..

누구나 반성해보면 쉽게 알지만,
태어나서부터 지금 이순간까지,
계속 자신이 본 영화 속에
출연을 계속 해온 단 1인은 누구인가
...
그 자신이다.
뻔한 의미로 그래서 자신이 사는 세상은 자신이 주인공이 분명한데
여러 사정으로 맡은 역할이
시나리오 내용과 함께
자기가 행하기는 하면서도
원하는 내용도 아니고
여기저기 내가 아니라고 보는 것들에 이끌리고 지시받고
강제되는 것들이기도 하고,
또 한편 바람직한 내용이 아니라고 느끼게 된다.

이런 각 내용 하고 싶은 내용, 해야만 하는 내용과
여러 형태로 자기 안에서 분리되는 내용을 만나는 가운데
자기 스스로 또 다른 이를
자신이 대하는 현실에서 실제 주인공으로 찾아 내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사실은자신이
늘 등장하는 주인공이 되어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는 것이다.
참 이상하긴 한데 대부분
현실에서 느끼게 되는 현상이다.

시로 표현하면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누가 주인인지 모른 채
이리저리 이끌려 다닌다는 현상은
어떤 이만의 특수한 현상이 아니다.

어떤 때는 나의 삶의 주인은마눌아인가.
아이들이 주인인가..
아니면 돈인가, 직위인가, 명예인가.
이렇게 오락가락한다.
심지어 어떤 이의 삶은 그 자신이 아니라
어떤 다른 사상가가 실 주인일 수도 있고
실제로 그렇게 내세우기도 하지 않는가.
그래서 이 현상이 심각한 문제의 하나라는 것이다.




헤겔은 아래에 내용을 보면
이런 입장에서
노예를 등장시키기도 하는데
이 헤겔은 처음 자신을 물질 자연으로 보다가
헤겔 특유의 정반합 과정을 거쳐 지양 합일어쩌구 하면서
이 분리와 소외현상이 해결될 수있다고 하는데,
솔직히 잘 이해가 안 되고 어렵기도 한데

prajna 님 쪽은 이것이 오히려 뒤바뀐 의식이라는 것이다.

본래 자신의 정신 내용물 안에서
자신과 자신의 것으로 이분시켜생각하게 되는 것은
일반 상식이긴 하다.
=> 세상을 보면 자기와 자기 아닌 것이 보인다..이런 내용이 상식이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내용을
서로 반대로 출발하고
종국에는 정반대의 상태로나아가는 것 아닌가.

정확히는 각 분의 입장을 잘 몰라 가부를 말하기 힘들다.
그러나 여하튼 prajna 님은
다 내 마음안의 내용물임을 알지만,
그러나 거기에는 나와 나의 것이 없다고 하고 그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런데
헤겔 쪽은
처음엔 물질 자연과 나로 이분시켜 보다가,
다시 자신도 물질 자연으로 봤다가
다시 정신으로 갔다가
이렇게 오락가락하다가
정-반- 합 외치면서 최종적으로그것이 정신이고 나다.
=>
그래서 외부자연과 자신이 소외되지 않게 된다고
횡설수설 하는데
이론의 타당성을 떠나
그렇게 해서 종착점에 도달한다고 한다.

그런데 좀 생각해보면
그런 종착점이 prajna님이 말한 출발점이 아닌가 또 혼동된다.

그래서 이 두 내용이 조금 이상하게 역방향인 것 같기는 하다.

이문제를 누가 옳고 그르고를 따지며접근하면 해결이 어렵다고 본다.

다만
어느 쪽이 바람직한가만 보고 생각하면,,

prajna 님이
이미 온 우주가 다 내것이긴 하지만,
이것을 바탕으로 놓고 헤겔의 결론처럼
주인의식을 갖고 산다기 보다는

오히려 그런 주인의식이
본래 나와 나의 것의 본체가 없는 가운데 만들어 가진
관념인 관계로잘못이므로 이를 부정하고

현실적으로도
그 주인자리를 다 팽개치고
봉사의식을 갖고 살자고 나아가는 것에
오히려 상당히 의미가 있지 않은가 싶다.

그것은 헤겔과 같은 이들이도달하려고 하는 상태가
사실은 이미 갖추어진 본전 기본 상태임을 잘 파악하면서
그러나 다시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더 바람직한 상태를 위해
그 안에 영원불변한 본체도 없고
또 얻을 것이 없으므로
번뇌를 일으키는 근본원인이 되는
집착을 모두 버리고
다른 이를 오히려 구제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거기서 즐거움을 맛본다는 의식과는
전혀 문제의식과 해결방안이
뒤바뀌어져 제시되고 종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이상하게 본다.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해보자.

공장에서 일하면서 재미는 다 자신이 보는데
그 재미는
그러나 힘든 노동이다.
이를 재미로 표현하면, 소외된 것이 아님이 되는데
재미로 표현할 수 없기에 소외된 것이기도 하다.

이를 재미로 표현하면, 그는 화를 내며
네가 내 입장이 되어서 직접 하루라도 똑같이 일을 해보라고
화를 내게 되기 쉽다.
그런데 그렇게 외치지 않는 사람이
어느 부분에 있는가부터 찾기 힘들다.

그래서 이렇게 표현하면 우선 근엄하고 힘든
노동을 희생으로 행하는 분들의 입장을
뒤바꿔 놓는 것이어서 죄송스럽게 되기는 한데
내 말은
목적상태는 그렇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 목적상태의 외관이 현실과 같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스스로 원하는 내용도 사실은 그것이다.
자기가 하는 일이 스스로 재미있었으면 좋겠고
그랬으면 바람직하겠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힘듬을 남까지 같이 재미로 여기는 것은
좀 불쾌하다는 것이다.
왜 이 힘든 노동을, 희생을, 땀을,
무슨 한가한 이가 놀이에서 느끼는 재미로 표현한다는 말인가.
이런 반론을 우선 받게 된다.
그러나 그렇게 표현해야 사실 바람직하다.

희생으로 여기는 순간
아무리 보상받고 수입-희생의 차익으로 수익을 계산한다 해도
그는 재미로 여기는 이의 출발점을 초월해 낼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수익을 희생을 통해 차익으로 얻어도
다시 그 수익으로 무언가 바꿔야 하고
바꿔서 원하는 것을 얻는데 성공하는 순간에만
겨우 앞에서 재미로 한다는 이의
출발점에 잠시 도달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형식상 자신이 택해서 적어도 하는 일이라면
그런 이상한 회계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 의미를 담아 위 용어를 쓴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본인도 그 현실을 알지만, 다시 정리하면 대강 다음이다.

그 현실의 내용을자신이 실제 점유하며 감각하며서 행하기는 한다.
그러나 앞의 비유에서 마치 대본을 가지고 말하는 상태의
억지 춘향이의 상태가 되어 자신이 하는 것이므로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또 실제로 그것들의 권리 등기나 등록이 자신의 것이 아니다.
생산 품목 결정이 자신이 또 아니다.
판매와 수입-비용의 불확실하고 불확정한 차익이 자신의 것이 아니다.( 이것이 상당히큰 경우가 많다)
반면 미리확정적으로 노동의 댓가가 늘 책정되어 안정되지만 실질은 생활이 조금 불안정한 정도로
싸게 지불된다.
이런 여러이유로
모든 생산과정에서 다른 소유주(주주들, 경영가들, 각 생산수단의 소유자들,,,)과 비슷하게
자신도 한 역할을 분할받아
생산의 참여와 점유와 감각은 다 행하는데
그러나 이런 여러 사유와 사정으로
자기가 이에 대해 주인의식은 도무지 가질 명분과 기회가 없다.

이 현상은 사실
실제로 1억원 가치를 갖는 택시를 몰고 다니면서도
늘 사납금 때문에 쫒기면서 산다고 호소한
오래전 한 택시기사분의 하소연과도 내용이 같다...

스스로 기름값을 당연히 내고
그만한 가치의 벤츠를 몰고 다니는 사람은
즐겁다고는 하는데
그는 또 그 나름대로 병자의 상태에 있고,

그래서 어디에도 이 묶임과 질병상태에서 자유로운 상태에 있다고
볼만한 이가 없다.

그렇다면
누가 이 모든 국토와 도로와 공장과 농토,,,등의 진정한 주인인가..

해롱 해롱~~

사실은 당신이고 나고,,그렇다.
그렇지만 그것을 출발점으로는 하되
거기에 머무르지 말자...는 것이
원래 doctr 님의 주장 내용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것이 잘 안되니까..
말은 그렇지만 현실은~~~하고 내용이 이어지게 된다.
그런 Mun님의 넋두리와최면성 발언에 끌려가면
결국 그 내용 그대로 자신이 노예로서 현실에서소외당하고 고통받는
이상한 현상으로 끌려 가고 만다.
현실의 피할 수 없는 난제가 결국
알고 노력하는 mun님을 그 상태로 이끌어 간다.
대부분의 삶의 현실이 또 그렇다.

안다.
그러나 이 현실을 피할 수 없다.

이 두 말 사이에서
뒷부분에서 대부분 고통이 나오는데
그러나 피하기 힘들고 거기에 머무른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 두 생각이 다 자신에게 피할 수 없는 최면을 거는 것이라고 본다면,
이왕 최면을 당할 바에는
황제 즉위식을 혼자 행하더라도
현실과는 반대 내용으로 가야한다고 본다.

그래야 치료라면 치료가 된 것인데
그러나 깊이 생각하면 할 수록
그렇게 보는 반대내용이현실을 외면하고 기만하는허구가 아니고
원래의 사실이다.

아닌가.
점검해보자.
자신이 눈을 떠야 세상이 보인다.
내가 눈을 뜨기 전에 누가 창조했건 저절로 있었건 간에
적어도 내가 협조해야
내 눈을 통해 내 마음에 그 내용이 맺힌다는 그것만은 사실 아닌가.

그리고 그 세상에는 늘 자신이 주인공으로 참여하고 있다.
역할이 마음에 들든 안 들든
악역이든 아니든
여하튼 늘 출연하는 이는 그 누구인가.
이런 점검은
어떤 최면이 더 사실에 가까운가를 알려주는 단서다.


그래서 지금껏 내게 지시하고
내가 사는 세상의 진짜 주인이라고 믿었던 이는 출연회수가
조금 떨어지면서
그들이거나 그 물건이거나 그 생각들이거나
사실은 주인공이 아니다..

( 물론 이것도 하나의 착각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런 착각을 갖고 나아가려 해도다른 사람들에 의해 곧바로 시정된다.
그런데 현실은 이런 형태로너무 시정이 많이 된 상태여서 오히려
현실의 대부분의 생각처럼 뒤바뀌어서 생각하며 산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현실이 이렇기에다시수정을 해서 돌려 놓는다.
그러나 그렇게 되돌려놓을 때
그러면 자신이 혼자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바로 이 생각도 또 다른착각의 하나인 것도 사실이다.
일단 이렇게 복잡하지만, 일단, 그렇다.)

=> 그래서 결국 선하고 지혜롭고 행복하게 되어 살아야 한다는 명제가 도출되게 된다.
그래야만 원래주인공이자신인 그의 세상에서
원하는 상태로 바람직하게 살게 되고,
또 반대로다른 출연진들로부터 묶이고 이용당하고 그리고 소외당할 염려도 없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뺏길 염려도 없이 즐겁게 보람차게 잘 살게 된다.

=> 반대로 말하면 이렇게 되려면 처음 착각을 수정하고 두번째 착각을 다시 수정해서
이렇게 생활 방향 모토를 정해야 한다는 의미도 된다.


만일 같은 문제 상황에서 이에 대해 이상한 해법으로
혁명가가 되어 혁명을 시작하고 성취한다고 하면
그렇게 내용이 되지 않는다.

가정해서, 그렇게 해서 성취되지 않음은
혁명이 성공한 이후 모습을 상상해보면 쉽다.

성공한 이후에는
자신이 비난하던 기업주역할을 누군가 맡아서 다른 이들을각 직장 각 역할에 무리배치시키며 일을 시켜야 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자신이 해보려 하자.

또는 거꾸로 자신이 그런 이로부터 무리배치 당해 원하지도 않고 적성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을 강제로 해보게 된다고 가정해보자.

큰 배 하나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 일을 서로 나눠야 한다고 할 때 다른 대안이 있는가.

혼자 할 수도 없다.
지금 처럼 하면 안 좋다니 혁명했다고 하고 다른 방안을 찾으니
똑같이 하기는 그렇고,
그래서 별 대안이 없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행하는가운데 이 사실을 깨닫는다면 늦다.


그런데 위에 나열한 여러방법이 아니고
어떻게 엄청난 배를 만드는가.

혼자 다 소유하고 다 참여하고 다 결정하고
다 노력하고 일해서 만들고
그 수익까지 다 자신이 갖고
하면 좋기는 할 텐데
그렇다고진정 즐거움을 맛보고
소외당하지 않게 될 수 있다는 것인가.

본래 그런 일은 없다.

원래 우주나 자연이
다 나눠서 맡아 행하는 것이고
원래 우주가 그렇게 다 돌아갔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서로 얽혀
서로 다른 착각 속에서 살아가게 된것이다.

올바로 첫 출발점을 사실 그대로 확인하자면
오히려 다음이다.

각 생명은각기 그 나름대로세상의 모습을 얻는다.
그가 얻은 그 자신의 정신 내용물 안에서
자신에 해당한 부분과 자신의 것들에 해당한 부분이 있고
그 가운데 자신이 주인인 것이다.
그렇게 나눈 내용들 가운데
자신과 자신 외부로 분리해 판단을시작했다.

또 이는자신 아닌 다른 생명들도 그런 것이었다.
그런 상태에서서로 교류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가운데,
문제가 발생하여,
이 내용이 조금씩 뒤바뀌어지게 되고
주객이 뒤바뀌어 가며
어느 시점 이후
뒤바뀐 이 판단을 받아들이고
그리고 그것을 정상으로 알고 살아가게 된 것이다.

이제 다시 이를 되돌려 원래 출발점으로 간다해도
그것이 바람직한 내용만은 아니다.
이를 출발점으로 해도 다시 향해가야 할 내용은 멀다.

그런데원래 출발점에서 벗어나서
원래 출발점에 가지도 못한다면 더더욱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각기 원 출발점으로되돌아가는 황제 즉위식은 필요하다.

어제 옆에서 mun 님 이야기를 듣다가
원래 현실에서 상식으로 다 아는내용에 같이 눈물 흘려줄 입장은 아니어서
최면에 동조당하지 않고
황제 즉위식을 오히려 권유해 승락을 받았다.

그러기는 했지만,
오늘이그 이틀째인데 실제로는 어떤 모습인가가 궁금하기는 하다.
현실에서 다른 사람이 걸어대는 최면의 힘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전히불쌍한 황제의 삶을 사는 것인지,
아예 무언가의 노예로 다시 변신해서 사는 것인지.
궁금한 것이다.

운전하고 다니는 모든 도로
보이는 모든 산과 들 강 바다. 국토
심지어 자신의 등기물이 아닌 남의 집까지
모두 소유한 황제임을 스스로 확인하고
살아간다면 좋을 것이다.

다만 그로 인해 추가적으로 연쇄 착각을 다시 일으켜
정말 혼자만 그런 황제인 것으로 과대 착각을 일으켜
행여 범죄로 나아가지만 않는다면,
--- 기존 상식에 입각해 말하면 --- 조금 바람직하게 '돈' 황제가 된 것이긴 하다.

그러나 어차피 돌 바에는
원출발점에 되돌아와 머물며 돈 취급을 받는것이
그래도 좀 낫다.

문제를 풀어도 거기서 출발해야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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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모두 황제 아니면
황제로 즉위 예정인 왕자 상태가 되고
그 이후 거기에서 풀려나도록 해야 스텝이 맞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니,
그 상태에서 제시하는 여러 문제 해결방안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지 않는가.

즉,
자신의 가슴에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욕구불만의 블랙홀이 하나씩 있는 상태로 살게 된다.

그러니, 남의 문제를 해결해 줄 힘과 여유는 어디 있으며
마음이 남과 싸우지 않고 평화로운 시간은 언제인가.

그래서 전도되어 뒤바뀐 상태의 삶은
평온도 없고
아무리 그 극단을 달려도
원 출발점에서 세상을 보는 이에 도달하지도 못한다.
초월은 꿈도 못 꾸고 가능하지도 않다.

그런데 문제는 원 출발점이 말 그대로 원 출발점일뿐
목적 상태는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왜 석가모니는
왕자의상태에서 출가를 하는가.

그 왕자의 상태에서 갖는문제의식을 공유하지 않기에
현실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석가모니가기껏 힘들게 갖다 버린 첫 출발 상태를
오히려 온 힘을 다해 서로돌진하는 것 아닌가.

안타까운데, 수로 보면 그런 이의 수가
그렇지 않은 이보다 훨씬 많다.

그래서 이런 기준에서 판단하면,
오히려 뒤바뀐 쪽 입장이정상취급을 받게 된다.

그래서 그 바탕에서는
열심히 투쟁도 해야한다.
또얻을 것은 본래 없어도
얻은 것처럼 열심히 보여줘야 하기도 한다.
그래서 서로 서로 힘들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이렇게 행하는 이유는
거기에도단 물과단 맛이 가끔은 있기 때문이다.






[ 참고 내용 ]
//소외 [疏外][소외/소웨][명사] -> 어학사전 참조
// al·ien·a·tion[èiljənéiʃən, -liə-] -> 어학사전 참조
//疏外, alien -> 어학사전 참조
// 소외 [疏外, alienation]-> 백과사전 참조
//자기소외 [自己疎外, Entfremdung seiner selbst]-> 백과사전 참조
//노동의 인간소외-> 백과사전 참조

참조링크:
소외[사회과학]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11236
소외[철학]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88113
소외[심리학] http://100.naver.com/100.nhn?docid=94365
소외[사회과학]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659708
자기소외 http://100.naver.com/100.nhn?docid=131220
노동의 인간소외 http://100.naver.com/100.nhn?docid=38047



web: http://blog.paran.com/society007/45484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