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Lab value
평등, 자유, 복지 등과 관련해
http://blog.paran.com/thebest007/44324860
에서 시작된 논의이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에는 특히 기원이나 이념 원리가 조금씩 다른
내용이 함께 섞여 혼란을 일으키는 면이 강하다.
한마디로
동양 유교 사상을 기초로 출발한 윤리관념과
서양의 자유 평등 계약관계를 기초로 출발한 윤리관념 ,,그런 내용의 충돌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예를 들어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강조하는 예의 규범을 계속 확장하여
직장이나, 공직 업무 관계, 공공기관과 일반 국민과의 관계로 계속 확장 적용시켜 나가려 하다보면
이는 결국 봉건 전제군주제의 이념으로 흘러 가기 쉽고
또 서구에서 시민혁명 이후 발전되어온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을 공공기관과 국민과의 관계에서 적용하다.
이를 학교나 가정 등으로 적용하다보면,
또 이것은 너무 심하지 않은가 하고 거부감을 일으키게 된다.
결국 가정에서는 전통적 윤리를 강조하고,
공공 사회생활에서는 또 서로 대등하고 평등한 관계를 강조하는 측면이 나타나는데,
사실 구체적으로는 애매 모호한 부분들이 있다.
사실 각각의 윤리이념은 주고 받는 내용이 서로 균형을 이루어서
각각을 일관하면 또그다지 부당한 내용이 아닌데,
그러나 각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기준으로 유리한 내용들을 원하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이들 각각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면만 적용해나가려 하게 된다.
간단히 보면 부모로부터 모든 도움 지원을 받고
심지어 상속도 받고 ....하지만,
그러나 반대로 자신이 부모에게는 아무런 의무나 부담을 지고 싶지는 않다..
이런 식의 모습을 보게 된다.
오늘날 우리 한국사회에서 여러 문제 현상으로 나타나는 모습들은
이처럼여러 윤리관념이 섞이고 혼동되는 가운데
오직 자신을 기준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찾고자 하는
각 개인의 희망과도 결합하여
여러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또 그런 결과
어떤 입장에서는 반대로 자신에게 모두 불리한 내용으로만 구성된
종합적인 요구를 받게 되기도 한다.
돈도 지불해야 하는 동시에또 그외에
대등한 계약자의 지위가 아니라,
아랫사람인 상태이므로 상대에게는
정성과 예의도 깍듯이 갖추어야 한다는 등으로
요구받는 한편,
자신은 또 반대로 아무것도 기대하거나 요구하지 말라는 것에 귀착되기도 한다.
그런 경우, 사람이 그렇게만 산다면, 물론 주변으로부터 다 좋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야 당연하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가 힘들게 되므로 또 문제는 일어난다.
평등한인격존중을 바탕으로 한 대등한 관계 형성을 특징으로 하는
서양에서도
계급 우열을 따지거나,어른을 공경하는 사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언어 생활부터 시작하여
어느 정도 인격 대 인격이 대등하고
그들 서로간의 관계는 자유로운 의사와 합의에 의해 주고 받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원리로 한다.
반면, 동양 특히 한국이나 일본은
언어에서부터 높임날 낮춤말 등의 여러 차별이 상당히 세분화되어 있고,
또 유교사상의 원리가 상당히 영향을미치고 있다.
혼란을 겪는 것은
이들이 각기 서로 충돌할 때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좋은가의 문제이다..
///up002///
길게 자세히 보면 복잡하지만,
간단히 보면 그렇다.
사실 모든 각 개인이 자신의 입장에서 가장 좋은 것을 마음껏 실현해보기를 원한다.
그것은 어떤 생명이든 그런 입장에서 출발하고 노력한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그것이 서로 지혜와 실력이 대등한 관계에서
제멋대로 되지 않으므로
결국 서로 계약관계로 주고 받는 관계로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그러나 반대로 그것이 현격하게 차이가 나면,
그것은 또 자신의 희망에 가장 맞는 형태로
그리고 최소한 그것이계속 안정적으로 영위될 수 있도록
원리를 만들어 강제해나가게 된다.
그리스라는 나라가 민주주의 원리를 처음 실현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시민 대 시민과의 관계에서 그런 것이고
노예나 외국인 여자에 관해서는 또 다른 원리를 적용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식으로 본다면,
어느 나라나 그 정도의현상은 찾을 수 있다.
대등한 입장에서는 서로 의논을 하고 타협하고
공동이익을 꾀히는 자세에 서서 문제를 바라보지만,
그러나 또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또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은
어떤 특수한 사회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의 모습 가운데 비교적 이상적인 형태는 어떤 것일 것인가?
어느 경우나 상대적으로
지도자나 권력가의 위치에 놓인 이들이
상대적으로 지혜나 부나 사실력을 우월하게 갖게 되고,
이를 통해 자의적으로 마음대로
지배하고자 하기 쉽다.
상대의 어리석음, 빈곤함, 약함을
자신의 탐욕과 분노를 풀기위해가장 좋은 형태로 마음껏 이용하는 모습이 나타나게 된다.
결국 지혜로운 이들이 상대적으로 이들 입장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아무리 권력을 갖고 지혜가 있더라도 그렇게 함부로 행하지 못하도록,
결국 자의적으로 전제를 행하지 못하고
그들의 노력은 결국
지배를 받는 일반 국민이나 시민들의 이익과 권리 자유 복지 등과 직접 관련될 때만,
정당성을 인정받고 행사될 수 있도록 여러 장치를 만들어 놓게 된 것이다.
결국 시민혁명이 성공을 거두고 만들어진
헌법이나 법률이 지향하는 이념은
권력기관들이나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이들이
함부로 힘없고 약한 이를 괴롭히면서 자신의 이익 쾌를 추구하지 못하게 만들고,
또 그들은 그들 상호간에 각기 기관은 기관대로
구성원은 구성원대로 서로 분리 견제하는 가운데
자의적인 권한 행사를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를 만들게 된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이렇게 초기에 구상된 각 제도는
결국 탐욕과 분노에 집착하며 이를 극도로추구하는 각 개인 입장에서는
이를 회피하여 권력을 집중하여
실질적으로 과거의 전제군주의 지위에 올라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게 되어 있다..
오늘날 제도적으로 살펴보면
결국 의회나 집행부 사법기관의 분립을 이념으로 했던 각종 안전 장치는
정당이 관통하여 이 모두를 묶어 나가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재판관들이 결국 누구에 의해 선임되어지는가를 살펴보면
과거 이 제도들의 입안가들이 꾀했던 장치는 사실상
그 실질이 권력 통합의 방향으로 흘러갈 여지가 많음을 찾아 볼 수 있다.
///UP003///
누구나 상상을 해 볼 수 있다.
자신이 과거의 왕과 같은 지위에 있다면 얼마나 좋은 것인가?
하다못해 과거 봉건국가의 영주같은 지위에 있다면 얼마나 즐거울 것인가?
이런 상상을 하면서.
과거 왕이나 영주가 누렸던 호사와 영화를 생각한다면 과거의 시절은
참 즐거울만 하다.
서양에서는 봉건 영주는 초야권(初夜權)이란 권한을 행사하였다고 한다.
[첫날밤의 권리 ius primae noctis독일어 Recht der erstenNacht, 불어 droit de seigneur]
이는
즉 자신이 지배하는 영지안에서
결혼을 하려면 영주가 처음 첫밤을 신부와 지낼 권한을 갖는 것이다..
그래서 영지의 사람들은 첫 아들은 영주를 닮았네 어쩌구 하는
노래를 부르곤 했다는데,
노예를 부리는 입장에서
남자노예는 노역을 시키고 여자 노예는 성욕을 위해 부리고자 하는 마음이
어찌 특수한 몇몇의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탐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 영주에게 딸을 바치려 온 노인 --
Wassili Dmitrijewitsch Polenow (1874).
노예제도가 있었던 사회에서는 일반적인 현상이어서,
미국의 모습도 1860년대 공식적으로 노예제가 종결되기 전까지는
일반적인 모습이었고,
흑인 노예가 아프리카에서 수입되기 이전에는
또 백인 노예도 마찬가지 운명을 겪어야 했다.
이들이 가축처럼 부리워지고 가족끼리도 따로 따로 헤어져 지내야 하는 등
가축과 동일한 지배를 받을 때
그들이 오늘날 우리가 사회를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과 달리
하늘을 바라보고 살았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이런 일들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과연 당시에 정말 그랬을까
그냥 만들어낸 이야기나 다른 제도가 잘못 전해진 것은 아닐까
역사적 증거는 무엇인가 하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이들의 상황은 사실 별것은 아니다.
성상문과 같은 이나, 사화 당쟁 과정에서
역적으로 몰리게 되는 다른 당파의 사람들이스스로는 죽음을 당하고
그 가솔 들은
다른 권문세가의 노비로 끌려 가거나 관노가 된다는 상황등도
마찬가지다..
변학도처럼 일개 지방 행정관이 되면,
왕이 누리는 그런 권한 비슷한 내용을축소하여
보장해주었던 사회배경도 그 안에는 들어 있다..
관노나 관기가 그런 역할을 맡은 것이다.
그것이 모두 먼역사 속의 일이라 하나하나 증거가 명확하다고 하기는 힘들지만,
우리 민족 모두에게는 그런 기억은 사실 매우 가깝고 생생하다..
과거 60 70여년전 우리가 식민지배를 이웃민족에게 받을 때
정신대 소집을 통고받고 아버지나 어머니가 자신의 딸을
관리에게 내줄 때의 심정이나,
징용 징병 소집을 받고 아들을 헌병에게 내줄 때의 심정이나
다르지 않다..
이 역시 증거가 명확하지 않으니 없었던 일이라고 주장하는 이웃도 있고
그렇게 강하게 말하는 이가 더 인기를 끌고
이번 선거에도 압도적인 표차를 거두고 이웃국가에서는 당선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분명 지배하고 승리를 거둔입장에서는
가장 달콤한 내용일법한 이런 내용을
그러나 당하는 노예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하여
그 비극을 깨닫게 해준 이가
바로 사실은 미국에서는 한 소설가이다..
우리는 상상을 해볼 수 있다..
과거 어떤 시절을 돌아가 상상한다면,
그 권력을 무한히 마음껏 행사할 수 있었던 전제군주가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상상할지는 모른다.
그 가운데에서도 거침없이 탐욕과 분노를 터뜨리면서 살았던 네로나 연산군의 삶이
가장 희망에 맞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그시대로 돌아간다면,
자신이 그 왕이 될 가능성이 높은가..
아니면 그 반대의 입장이 될 가능성이 높은가...
그래서 한 현명한 황제가이를 놓고 생각을 시작한 것이다..
어떻게 해야 가장 모든 이에게 좋고
장차 자신에게도 길게 널리 좋은 것인가...
그래서 스스로 왕이 될 때는 위민정치, 왕도정치를 지향해 나선 것이고
반복되는 왕의 업무에서 내려올 때 즘에는
오늘날 보는 듯한 국민주권주의 입헌 정치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 오늘날 국민들이 다 그렇게 생각하면 기분이 좀 좋지 않을까요???)
///up005///
인간 대 인간
생명 대 생명,,이들간의 관계에 있어서 여러 윤리, 규범이 있지만,
그 윤리 규범이 도출되고 또 그 타당성을 판단하게 되는 기준은
결국 관계되는 이들에게 어떤 방안이
좋음을 가장 많은 주체에게 오래 오래 많이 가져다 주는가에달려 있다.
결국 유교는상하 평등한 여러 사회 관계에서
서로 남이 자신에게 바라고 희망할 만한내용을 꺼내,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충성을 바란다면,,--
그것을 그대로 아랫사람에게 가져가 윗사람에게 충성하라고 한 번 말하고
또 한편 아랫사람은 윗 사람에게 어짊과 덕을 바란다고 한다면,
그것을 그대로 윗사람에게 가져가 아랫 사람들에게 어질고 덕을 베풀라고 말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도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하라고
비슷한 말을 한다..
누가복음 6:30 너희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 싶은 그대로 남을 대접하여라
///up006///
사실 이 원리로 하면 윗사람이 아래사람으로부터 충성을 바란다면,
아랫사람에게 충성을 하라는 말이 되고
윗사람에게 어질게 대하고 덕을 베풀기 원하면
자신도 윗사람에게 어질게 대하고 덕을 베풀어야 함을 의미한다.
조금 기본적으로 평등한 내용으로 바뀌었지만,
자신이 꿀 주고 상대로부터 꿀 받는 것이나,
꿀 주고 사탕 받는 것이나,
사탕 주고,쵸코렛 받는 것이나,
쵸코렛 주고, 빼빼로 받는 것이나,,
이치 자체야 크게 다른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사실 원래의 사회 관계에서의 이념은
이렇게 서로 좋은 내용을 주고 받는 관계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관계에서
사실은 각 개인은 이런 윤리적 요구를 따르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자유나
자신에게 유리한 각종 요소- 평등, 복지,,권한, 권능, 혜택,,,,- 등을
그때 그 때 떼를 쓰며 요구하고
또 사실력이 있을 때는 마음껏 행사해보려고 고집을 피우고
전횡을 일삼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 그 반대의 것을 자신이 마음껏
상대에게 주었으니,,
또 그 반대의 것을 또 어느 상황이 되면
마음껏 받게 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길게 보면
어떤 이가 한 때 즐겁고 그로 인해 이후 괴로움을 받고
그런 모든 관계는 사실은 자업자득의 관계에 놓이게 된다..
///up007///
그런데
결국 이런 여러 관계를 검토해보면,
어떤 것이 늘 즐겁고 좋음을 주는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가를
찾게 된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정 현명한 이가 걸어가야 할 길이기 때문이다.
한 때 남을 신나게 괴롭히면서 즐거워하다가
그후 남에게 붙잡혀 신나게 채찍으로 맞으면서 지내는 일을
어차피 주고 받는 것이 서로 같다고 하여
즐겨 찾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나은 방향을 찾다보면
모든 생명을 다 존중하고 사랑하는 가운데
상대를최상으로 이끌기 위해
아무 댓가를 기대하거나 바라지 않고
노력하고 베풀면서 사는 것이 옳다..
그리고 그런 목표를 향하고
그것을 잘 실현할방안을 잘 실천해 가는 가운데
자신의 즐거움을 찾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상대가 비록 당장은 어리석고 힘이 약하고
아무리 기다리고 지켜 본다해도 장차 더 낫게 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도
그 모두를 자신의 친부모로 생각하고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상황에 따라서는 친부모마저
원수나 가축으로 대하는 경우마저 있기는 있기에
다시 수정해 덧붙이면,
모든 이를부처님이나 하나님, 예수님으로 생각하며 대해야 한다는 것이 된다..
부처님도 그런 말씀을 남기고
예수님도 그런 말씀을 남긴다.
왜냐하면 그것이 올바른 길이기 때문이다...
///
혼자 생각을 그냥 아무렇게나 적어 놓고 그 근거가 없으면 안 되는데
이것 일일이 찾고 붙이기가 상당히 어렵다..
그나마 성경은 쉬운데
다른 곳은 좀 어렵고,
심지어 어떤 것은 내용은 별것이 없어도 정말 아무리 노력해도 붙일 방법이 없는 곳도 있기는 하다..
개인적으로는 이러면 서로 안 좋다고 본다..
서로 발 붙잡고 늘어진다고 해서 뭔 득이 그렇게 된다고 하는 것인지,,
심지어 팔리지도 않는 수많은 책 들을,,저자권 수입이 출판비용 대비
마이너스-인 책들마저 모두 다 묶어 놓고
이용을 서로 엄청 어렵게 만드는 것이원래 그 근본 동기와 원인이 무엇에서출발한 것인가...
멀리 그 취지와 이유 동기 서로가 그렇게 하는 심리에 관련해살펴보지만,
사실은 모두 앞의 내용과 기반이 같고 같은 이야기다..
여하튼 복사에 성공해온 이부분,,,
// 마태복음 24장 46-5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마태복음 25장 36, 41--45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
등의 부분을 참조할 만하다고 본다..
///up008///
** 결론은 무엇인가 **
어느 입장에 놓고 생각하더라도 올바른 것은
제일 어리석고 작고 힘없고 불구이고 가난하고 심지어 죄를 지어 지금 옥에 갇혀 있고,,,,등으로
우리가 상대를 대할 때 상대가 참 만만하게 느껴지고
그래서 상대에게 자신이 원하는 마음대로 행할 수 있다고 보일 때
위 이야기를 놓고 생각해보면
그런상대가 바로상황이 바뀌면
나를 도끼로 찍을 수도 있고, 손을 내밀어 구해줄 수도 있는 이이기도 하고,
또 최후의 심판에서
끓은 지옥에 밀어 빠뜨릴수도 있고 젖과 꿀이 흐르는 천국으로 붙들어 오를 수도 있게 하는
그런 분이구나,,하고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자세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서
각 구체적 상황에서 떠오르는 내용들이
실제 각 상황에서 즐겁게 해야 할 내용이기도 하다.
그리고 모든 뛰어난 이들이 보람과 즐거움을 발견해야 할 내용도
바로 이런 것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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