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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4-dipl-0001-전쟁을 통한 분쟁해결의 문제점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12. 1. 00:32

434-dipl-0001-전쟁을 통한 분쟁해결의 문제점

전쟁을 통한 분쟁해결의 문제점

반목하고 대립하고 원한을 품은 부부간 형제간 부자 간 친척 간 이웃 간

이 대립 원한 갈등을 풀어버리는 길은 없을까..

가장 원칙적인 내용으로 성인이 알려주는 내용을 생각해보면,

어느 일방은 상대가 용서를 하든 않든

자기 자신만은 자신의 잘못을

참회, 회개, 반성하고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또 다른 일방은

상대가 참회, 회개, 반성, 사과를 하든 않든

자기 자신만은 상대에 미움과 원망을 갖지 않고

상대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서로가 상대의 무엇을 선행조건으로 내걸지 말고

그저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한다고 성인들이 가르쳐준 일을

이처럼

그저 믿고 따라 그저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본다.

적어도 그 일방만은 이 대립에서 벗어나와 구제받지 않겠는가.

만일 나 자신은 하는데 다른 이들이 여전히 아니라면,,

그래서 남은 이들이 끝내 고집한다면,,

역시 그 각각이 역시 제 갈 길 알아서 갈밖에는 없지 않겠는가?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 상호증오와 미움과 원한의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들이

참으로 안타깝고 연민을 느낄 만하지 않는가?

그러니 자신만이라도 넓게

그 모두가 다 같은 생명이라는 점에서 같다고 보고

더 나아가 이 모두가 넓은 자신이라 보고

이 모두를 다 똑같이 사랑하면서

이들 각각을 모두 똑같이 최상의 상태로 이끌어들이고

자신도 그곳을 향하여 나아가는 데

성실히 매진하면 된다고 본다.

나로선 모든 대립 갈등에

이런 성인의 가르침 이외의

다른 해결방안은 없다고 본다.

아닌가? 그렇게 혹시 생각한다면,

역사책을 뒤져 다른 방안 다른 방향으로

해결책을 찾아 나선 선례들

그리고 그 원한의 시작과 끝의 결과들을

하나하나 찾아서 자세히 살펴보면

그 비극의 모습이 단지 서로에게

상상의 내용만은 아님을

쉽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단호하게 대응하고

자위권 차원이라면 선제공격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이스라엘 모델이라는데

이를 대립 상태에서 따라야 할 표준 모델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 역시 이스라엘이 참 잘 되었으면 하는데, 이스라엘이 계속 이런 노력을 하여, 다음에 주변 아랍국과의 치열한 살상전과 훌륭한 핵전쟁수행을 통하여 우리에게 모범적인 롤 모델을 하나 전해주었으면 한다. 일본이든 중국이든 아랍이든 이스라엘이든 전쟁을 하든 말든 뭔 걱정이겠는가마는, 싸움터가 내 안방이라 좀 자제하는 거지, 이런 충고는 도움을 주는 건지, 싸움을 권장해 빨리 폭삭 망하라는 건지,,

이스라엘이 자신과 아랍국과의 분쟁문제의 해결을 생각하면서 미국에게 요구하는 내용이 조금은 어처구니가 없다고 보이는 대목이다. 문제는 이들 민족이 머리가 뛰어나서 노벨상을 거의 휩쓸고 미국에서도 상당히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민족 집단이라는 점인데, 이들이, 자신들과 이란 및 아랍국가의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과 북한관계를 본보기 시범 케이스로 이란 등 주변 아랍국에게 보여주려는 목적으로 이용하고자 실제로 영향을 행사한다면,,

미 군수업체도 환영!! 일본도 환영!! 잘하면 이번에 통일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한국인들도 환영!!

난 민방위 대원도 졸업한 마당에~ 수 십 일 전에 내다버린 비상식량 라면이나 다시 찾아서 창고에 쌓아 놔야할 텐데,,,아이 유통기한 지났다고 괜히 버렸어,, 괜히 버렸어,,

생각해보면 역사의 아이러니는 이들 유대민족이 유럽 각 곳에서 지독한 차별 따돌림 박해 그리고 최근에 집단 대학살을 당한 민족이었다는 점이다.

처음 출발 동기는 예수님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충고는 콧방귀로 날려 버리고

바바리인지 뭔지 하는 (긴급수정-바라바라고 함) 식의 저항운동을 따라 로마군과 맞섰다가, 그 후 전쟁에서 폭삭 한 다음 로마군에 의해 고향에서 집단으로 쫓겨나 이후 몇 천 년을 여기저기에서 박해당하며 유랑을 시작하게 된 배경이 있다는 점이다.

많은 유럽국가가 독일에게만 책임을 넘기고 시치미를 떼지만, 영국을 포함한 유럽국가 대부분 국가에서 유대민족의 집단 학살 박해의 역사가 숨겨져 있다.

나치치하에서도 유대인을 체포한 것은 오직 게쉬타포나 ss요원들만의 활약과 노력 덕은 아니다.

더 큰 아이러니는

그 긴 유랑의 역사 끝에

최종적으로 독일군들의 박해로부터도 교훈을 받지 못했는지,

몇 천 년 전에 살았던 곳이라고 이스라엘 땅에 집단으로 들어간 다음,,

그곳에서 살던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고

다시 유럽인들이 자신들을 상대해 했던 방식과 유사하게

또 다시 팔레스타인이나 주변 아랍민족과 또 상대한다는 자세다..

이들이 생각하는 자신들이 다른 주변 민족 또는 이웃국가와 잘 살아가는 방안으로 찾는 해법의 궁극적인 해결방안은 무엇일까?

아마 지금 상태에서라면, 아랍민족은 1인도 남겨놓지 않고 독가스나 락스로 모두 깨끗이 지워버리는 것?

그러나 아마 아랍민족의 최후의 1인마저도 이스라엘 주변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해도, 이런 식으로 계속 집단적으로 살아가면 누군가에게서라도 핵폭탄 수개 박스를 일시에 선물 받게 될 것 같지 않은가..

자신은 열심히 주변의 해충을 청소해야 한다고 독을 주변에 뿜어대지만, 내가 볼 때는 이스라엘의 이런 독선적인 태도가 독의 원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 유대인들이 그 뛰어난 머리와 지혜로 가는 곳마다 사는 곳마다 주변민족의 미움을 받는가?

수로는 별로 적은 집단인데, 들어와 살면서 자신들과 섞여 같아지지도 않고,

그러나 개인들의 능력은 살펴보면 상당히 뛰어나서

그들이 활약하면 할수록 욕심나는 것을 잘 차지한다는 데

그 원인의 특징이 있는 것 같다.

한마디로 얄밉게 살아간다는 점 아닐까?

노벨상 수 백개를

유대민족이 받아서 민족 박물관의 장식장에

상패를 쌓아 놓으면 무엇하겠는가?

만일

이들을 모델로 삼아 우리 한국인들도 외국에서 활약하면,

한국인이 사는 세계 곳곳에서

가깝게는 La 폭동사태의 모습과 같은 모습을

수없이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

왜 당시 흑인들은

문제의 발단인 백인경관이 아닌

한인가게를 타켓으로 삼았을까.

포니차를 타고 가다 그 흑인이 잡혀서~~?

그러나 가정을 해보자.

유대인들이 어디 가든

널리 인류와 생명이라는 공통점에서

그들이 사는 곳의 다른 이웃 주민들 속에

함께 녹아 들어갔다면 어떠했을까.

녹아들어 가면 인류 가운데에서

나올 노벨 수상자가 없어졌을까.

그들의 자손은 아예 특징도 없이 없어졌을까?

또 다른 가정을 해보자.

유대인들이 그 뛰어난 똑똑함과 뛰어난 능력들로 얻은 이익을

그들만이 갖지 않고,

주변의 다른 이웃들에게도 널리 베풀고

결과적으로 유대인이 속한 사회 전체의 이익을

함께 증가시키는 데

사용되었다면, 어떨까?

생각해보면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동물세계에서도

악어는 악어새를 잡아먹지 않는다.

무슨 말인가.

자신이 조금 희생되어도

그 희생으로 이웃이 도움을 받으면

자신도 또 반대로 도움을 받는다.

만일 자신이

이웃에 도움이 되지 않고,

자신이 이웃으로부터 미움을 받을 일을

계속 쌓아나가는데 열중하다보면,

어느 날 상황이 바뀌어

전체가 집단 학살을 받는 상황에 처해도

그것을

자신을 미워하여 학살하고자 하는

이웃의 책임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원인이 물론 너그럽지 못한 이웃에게도 있겠지만,

그 너그럽지 못한 이웃에게

그런 대우를 받아야만 하는

자신들에게도 하나의 원인이 또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그 고통의 대가를 확인함에 있어서

굳이 또 다른 악마의 출현을

기다릴 필요가 있을 것인가.

그런 삶 자체가 실질은 고통임을 깨닫지 못하고

또 과거 역사로부터도 교훈을 얻지 못하고

과거의 잘못을 무수히 반복해가며

계속 그렇게 살아가려고 고집하는 것뿐이라고 본다.

그 작은 수의 민족이 그 거대한 수의 아랍민족과 상대하여 잘 싸워 연명해가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단순한 관전자로서 이스라엘에 충고한다면,

어떤 충고를 하게 될까.

그런 충고를 나는 이스라엘로부터도 듣고 싶다.

형제나 부부간에 다툼이 일어나는 가정은 수도 없다.

그러나 그 가정마다 다툰 상대방을 그 때마다

처절하게 되갚아주라고 충고한다면,

결국 매번 싸울 때마다

그 가정에 살인 방화 토막 살인을 만들어내라고

옆에서 부추기는 것과 같지 않은가.

정말 그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보는가?

한 발만 더 다가서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정말 아무도 예측하지 못해서,

모두 해법이라고 그런 내용만 알려주려 하는가.

실제 경험하고 그것이 아닌 것 같다고 절실히

느끼는 순간부터는

사실 상황을 거꾸로 돌려 돌아 나올 길이 없다.

물론 공격을 당하고 분통이 터져 나오는 거야

인지상정이라 이해 못하는 바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앞과 같은 내용을 원하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누구나 냉정하게 차분히 생각하면서,

조금만 뒤 결과를 따라가 예측해보면

그 결과의 모습들을 뻔히 알 수 있는 내용인데

이런 뻔히 보이는 결과를 향해

한 번 용기를 내 더 내딛어 보라고,

옆에서 친구인척 응원하는 많은 주변 친구들은,

사실은 친구인척 훈수를 두지만,

상당히 속으로는 속셈이 더러운

얄미운 친구들이야~~

한국과 북한은

세계 다른 나라 사람의 시각으로 보면,

이 둘이 서로 잘 구별이 안가는 엇비슷한 같은 민족인데

같은 민족 형제끼리 지독하게 대립을 해서

세계적으로 소문난 상태다.

한국에서 사는 사람은 누구나 쉽게 인정하겠지만,

한국내에서도 지역갈등이 심해

마음상태에서는 이미 쩍 균열이 가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닌가? 아니면 다행이고,

그것을 기본으로 중국출신 조선족에 대해서도 비슷한 심리를 갖고 산다.

더 나아가 인종차별을 받을 때는 열을 내지만,

국내에 와 일하는 타국 출신 근로자에게는

또 지독하게 인종차별적인 자세들을 취한다.

어제 본 기사내용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재벌기업 사장은 근로자를 잡아

알류미늄 뱃트로 난타한 다음

아무렇지도 않고

아무런 일도 없으리라고 생각하며

태평하게 살아가려고 한다.

이런 마음에서 북한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미 와 있는 가난한 재중 조선족 동포,

북한 탈주민들을

가난하다 멸시하고 귀찮아하면서,

그 수많은 가난한 북한주민들은

어떻게 대하려고 하는 지~~

조금은 의문이다.

나라의 방향은 그 나라에 살아가는 각 개인들의

마음이 모여서 결정한다.

누군가 한 사람이 마음대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 마음들이 하나하나 어떻다고 보는가.

물론 전부는 아니라고 하겠지만,

그러나 사실을 사실이 아니라고 외면할 도리는 없다.

이 각각의 사례들은

각각의 마음에 지독한 깊은 상처를 서로에게 남긴다.

만주에 돌아간 한 사람이 그냥 쉽게

한국인이 여기에 들어오면 손을 봐 주겠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고

그 상태에서 눈을 감고

자신의 욕심만 집착한 채

계속 그 방향으로 나아가려고만 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가 아닌가.

지독한 상처가 한 악마에게 남겨지면,

그가 사는 사회 전체에 엄청난 비극이 온다.

프놈펜에서

교사에게 의사에게 가진 자들에게 골고루

원한을 품은 한 악마는

전국에서 소년병들에게 비닐봉지 하나로

간단히 총알 낭비 없이 사람을

학살하는 방법을 전수하여

전국을 순식간에 해골 더미천지로 만들어 버렸다.

그는 물론 악마일 것이다.

그런데 왜 그 주변의 다른 천사들은

그를 따듯하게 이끌어

선한 천사로 바꾸지 못하였을까.

그리고 그 천사들이

왜 악마들의 손에 이끌려 학살당하였을까..

나는 생각한다.

초등학교만 나와 그것이 전 재산인 한 가장이

재벌집 아들인 사장에게 붙들려

알루미늄 뱃트로 난타를 당할 때

그의 가슴엔 무엇이 남아 있을까..

난 적어도 그가 후생에 다시 태어나

그들에게 그에 상응한 몇 갑절의 되갚음을 해주지 말고,

그를 용서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상대도 무언가 필요한 것이 있지 않을까..

용어야 각기 다르지만,

절실한 회개, 참회, 반성, 사과, 용서를 구함,,

그런 것이 그 사장에게는 필요하다고 본다.

적어도 상식적으로~~

아니면 또 말고다. 각기 알아서 제 갈길 가는 것뿐이라고 본다.

국내에서는 그렇지만 한국인이 중국인과 일본인에 대해서는 어떤가하면 또 만만치 않다.

일본에게나 중국에게나 모두 가까운 원인이 있다.

일본이 한국을 합병하여 한 일이 선의에 바탕을 둔 일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6.25가 끝나갈 무렵 전쟁에 개입하여 이 상태로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런 일본인들이나 중국인들은 왜 반대로 한국인들에게 또 적대적일까?

그것이 바로 상호작용이다.

일본만 예를 들어보면

처음에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을 선의로 대하지 않고 강도 강간범의 마음으로 들어와

국토와 국민을 유린했다.

그들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여하튼

그 결과 한국 국민의 가슴 가슴마다 원한이 숨어 있고

이런 한국인들은 상대하는 일본인은 또 다시

그와 같이 상대적 마음을 갖고 살아가게 된다.

그래서 적어도 공식적은 아니라 해도,

대부분 일본인들의 눈과 마음에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한국인들은 각종 악과 더러움의 상징이다.

아닌가? 재일동포차별이 해소되었는가?

이 역시 되었으면 다행이고,

만일 아니라면

이것이 언제쯤 해소될 것인가?

다시 시각을 국내로 돌려 보면

같은 나라에 살면서도 끝없이 대립하는 두 지역이 있다.

이 둘의 대립의 시초가 무엇이었을까?

서로 영토를 분할 해 싸우던 아주 오랜 고대국가 시절의 옛날,

누가 처음 잘못이랄 것이 없이

서로 경쟁하고 다툼을 벌이다, 원한이 맺히고

그래서 최종적으로 선의가 바탕이 되지 않고

무언가 원한을 원한으로 풀어버리면서

힘 약한 상대는 정복을 통해 하나로 만들 수 있다고

간단히 생각했던 어떤 일이 계기가 되었지 않았을까,,

그저 그처럼 추측해본다.

그렇지 않고서는 왜 이리 그다지 별 차이도 없는 사람들끼리 서로 편이 갈라져서 대립하고

여전히 자손들에게 상속시켜 주려 하는지,

설명할 길이 별로 없다고 보는 것이다.

내가 아는 역사지식에서는

아마 두 고대국가에서는 서로 결혼동맹시절도 있었고 했었지만,

그런 것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 듯하다.

그보다는 신라의 통일 직전

먼저 의자왕이 신라를 침략해 김춘추의 딸과 사위를 죽였고

김춘추가 그것을 외교를 통해 통일을 이루고 앙갚음하고,,,

그런 배경이 숨어 있지는 않을까?

이 역시 아니면 말고,

그것이 아니고

두 지역의 통일이 서로간의

경사스러운 결혼처럼 축하할 일이었다면,

왜 그 지역 후손들은 각기 그렇게 오래

대립의 마음으로 남아 있는가?

이 관계의 원인을 미루어 생각해보면

아마 당시의 상황이

일본인과 한국인사이의 관계는 아니었을까?

이 심리가 언제까지 갈련지 모르지만,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런 문제가 더 심하다고 볼 수 있지만

잘 해결하고 있는 다른 나라들이

역사책을 뒤져 보면 많이 있다.

사실 각 개인의 대립반복은

친척 간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보인다.

4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마음

바로 그 마음부터 모든 문제가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오직 그렇게만 살아가는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의 누구와도 친구로 지낼 수 있고

함께 가정을 이뤄 잘 살아갈 수 있다.

더 나아가

나라와 나라가 합쳐 한 나라가 되는 과정은

오직 무력정복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스페인도 그렇고 여러 나라에 본받을

좋은 사례도 많다.

따라서 널리

좋은 선례를 찾아 배우고,

없으면 이 땅에서 새로 만들고,

있는 좋은 선례는 키우고,

다른 나쁜 선례들은 키우지 않고

새로 만들지 않는 것이다.

사실상 문제로 있는 것들을 문제라고 제시하면,

가슴이 아프고 외면하고만 싶지만,

그러나 그렇게 병을 숨기고 외면만 한다고

자연스럽게 치료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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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참조 기사 >

기사1 -요약:  이스라엘 신문이 북한에 대한 한국의 대응을 보며 이란이 이를 보고 배울 수 있다며, 우리가 닮지 않도록 분투해야 할 모델"이라고 지적했다.

기사2 -요약: 북한에 대해 '이스라엘식 응징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단호하게 대응하고 자위권 차원이라면 선제공격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이스라엘 모델이다.

< 참조기사 원문: 비공개- 생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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