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신청사 모습이 보기 안 좋고 생뚱맞다는 입장이 10명 중 6명이라고 한다.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206/h2012062920562186330.htm
일전에 시청 근처에서 사진을 찍을 때에도 건물이 특이한 것은 인정할 수 있었지만, 앞 건물 및 주변과 조화되지 않고 왠지 이상하고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http://blog.paran.com/story007/47512642
그러나 막대한 건축비를 들여서 완공이 되는 지금 그것을 문제삼은 들 어떻하겠는가. 헐고 또 지을 것인가.
그럼에도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여러 사람들이 오랜 기간 바라보고 이용하게될 시청 건물 디자인 심사에
미리 좀 많은 사람이 참여하여 여론수렴을 하고나서 지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모두를 모두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런 과정을 거치면 좀 걸러지게 되리라 보기 때문이다.
일을 결정하고 추진하는 사람들은 이런 과정을 싫어하기 쉽다.
결정권을 갖는 입장의 사람도 자신만의 견해와 판단이 있는데, 이것이 다수의 의견과 늘 같지는 않고,
이런 경우 다수의 의견에 의해 자신의 입장이 관철되지 않는 것을 그는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 일 처리도 좀 늦어진다.
평가하는 기준이 각기 달라서 환경 평가나 교통 유입량 평가 등 다 방면에서 심사를 받는 것도 역시 불편하다.
그 결과 막무가내로 추진하고나서 돌아설 수 없을 상태가 되어 건물이 완성된 다음 만나보면,
불만이 있어도 이제 어쩔 수 없는 상태에 이른다.
뜻이 관철된 것은 분명한데, 그러나 이는 그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일반인에게도 길게 두통거리를 남겨준다.
엄청난 공사비를 들여 무엇을 사람들에게 주고 있는 것인가. 한마디로 불쾌감이다.
사실 하나의 미술 작품을 놓고 볼 때 창작자의 입장과 감상자의 입장이 동일하지는 않다.
어떻게 보면 아름답고 좋은 작품 기발한 작품으로 인정해줄 여지도 있다.
그것은 그 설계나 디자인을 맡은 입장에 전적으로 동조해 바라보면 그런 느낌을 가질 여지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생각을 갖는가. 내 돈을 직접 빼내 지은 것도 아니고, 이제는 부수고 다시 지을 도리도 없고, 보기 싫으면 그 쪽으로 안 가면 되고, 이왕 지어 놓은 것 좋은 점을 찾아서 보도록 노력해보자. 무언가 좋은 점--최소한 저렇게 지으면 앞으로 안좋다는 교훈이라도 얻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들을 통해 결과적으로 좋은 느낌을 가져보도록 노력하려고 한다. 적응해보려는 노력이다.
시청 건물이 완성되면 여러 시민공간이 마련된다고 하니, 많이 이용하기 위해서는 그런 긍정적 마인드가 필요하다. 불쾌하면 방문하는 것도 꺼려지지 않겠는가. 그러면 자기 손해다. 솔직히 편한 마음은 아니지만, 무엇이던지 처음에는 낯설고 보기 싫어 보이기도 하는데 적응하기 따라서는 또 달라진다.
그러나 첫눈에도 보기 좋고 사용하면서 계속 좋은 작품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기는 하다.
여하튼 하나의 작품은 그 작품만 놓고 볼 때와 주변 여러 물건들과 함께 볼 때 등등이 다 다르고 또 감상자 개인의 상태에 따라서도 또 다르다.
한 때는 버스 색깔이나, 화폐 디자인에서도 그런 문제가 있었다.
대부분 이런 일들의 결정은 해당 전문가들이 기본적 결정을 하지만,
결국 이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들이 최종적으로 이 결과를 대하고 사용하고 또 평을 하게 된다.
그러니 사실 전문가들도 최종 심사 기준을 일반인들을 놓고 평가받아야 한다.
그것은 되도록 돌아올 수 없는 시점에서 행하지 말고 미리 시간을 들여 받도록 하는 것이 낫다.
한 전문가가 자신만의 독창적인 생각과 판단 하에 어떤 작품을 계획한다해도,
그 평가를 최종적으로 일반인들이 사용하면서 평가를 하게 되니,
어차피 사정이 그러므로
미리 받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깜짝 서프라이즈 선물처럼 선사하는 방식이 정말 일반인들이 끝내 적응하지 못하고 단지 공포와 불쾌 불편을 오래 주고 말고 끝난다면, 어떻할 것인가.
의사는 환자를 위해 약을 사용하거나 수술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환자는 약이 쓰고 수술은 공포스럽다.
그러나 해야 한다. 이렇게 의사가 생각하더라도 다시 더 좋은 방안을 찾아 나서게 된다. 환자가 좋게 생각할 수 있도록 여러가지 방편을 마련하는 것이다. 약을 조금 달게 예쁘게 꾸미기도 하고, 마취제도 놓고 간호사도 예쁜 아가씨로 배치하고 취지도 잘 설명해주게 하고...등등
아무리 좋더라도 강제로 상대를 체포해 묶어 놓고 수술하면, 성공하더라도 불쾌감이 오래 남기 쉽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부작용이 생기거나 만일 실패하면 죽음이다. 남을 위해서 일을 하면서 굳이 이런 상태에 몰릴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러니 남을 위해서 일을 할 때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취지와 목표에 대해 잘 설명을 하고 동의를 얻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부분 권력가나 집행자들은 무식한 이들을 상대하여 일일히 그 취지와 이유 동기 목표 다른 대안보다 좋은 점 등등을 설명하고 동의를 얻는 과정을 생략하려고 한다. 몰라서 그러는 것 뿐이니, 잘 아는 자신이 다 척척 알아서 하면 된다는 식이다.
일을 하는 이유가, 그런데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에 집착하면 그것이 좋다고 할 수 있는데, 결국에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면, 사실은 앞의 과정이 더 중요하다.
아이를 공부시키는 것이 좋다고 어른들은 다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도 마찬가지다. 무언가를 생략하면 그 아이를 공부시키는 전 과정이 아이에게는 공포와 고통의 강요로 아이를 끌어 강제해 관철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은 그 아이가 커서 의사도 되고 검사도 되고 할 수는 있겠지만, 그 아이가 커서 그 과정을 돌아보면 정말 끔직하게 여길 수도 있다. 그렇게해서 얻은 것이 명예고 지위고 수입이라고 해도, 그 기간동안 겪은 고통 불쾌감을 상쇄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러니 이 경우에도 방편을 달리해야 마땅하다. 공부를 해서 똑똑해지는 것도 필요하지만, 또 그 과정 전반에서 즐겁게 따라할 수 있도록 방편을 추가해야 한다.
불이 나서 아이를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급해도 아이를 창밖으로 던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꼭 그렇게 던질 수 밖에는 없다 하더라도 그래도 역시 좋은 방편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사실은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이 다 잘 알아서 또 생각하고 생각해서 결정했는데 무언가는 빠뜨리고 만다. 무식하고 잘 모르는 일반인들을 빠뜨리는 것이다.
● 이번에 외국과 군사협정을 맺는다고 하는데도 결국 또 이것이 걸림돌이 되었다.
사실 군사협정에 일반인들이 아는 내용이 무엇인가.
이런 것은 군사작전처럼 해당 전문가들이 알아서 할 일이고 따라서 비밀로 처리해 놓고
그 다음에 국민들에게 공표하면 그 뿐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평생 국민들에게 비밀로 할 일이라면 모르되 결국 알 일이라면, 어떤 단계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나은가.
돌아설 수 없는 상태로 비밀로 처리하고 나서 그 후 국민들에게 공표해서, 그후 국민들이 불쾌하게 여기더라도 무조건 계획한 일은 관철시키고 이후 국민들은 그저 참고 견디게 하는 것이 나은 것인가.
아니면 무언가 일반 국민들이 사정과 취지를 잘못 알아서 불쾌하게 여기는 것이라면,
그 취지와 동기 등등을 잘 설득해서 지지를 얻고 관철시키는 것이 나은 것인가.
'417b-dec'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펌]훈민정음 창제를 둘러싼 세종과 최만리의 찬반 논쟁 (0) | 2011.09.27 |
|---|